장근석 춤인 줄 알았더니⋯전국 휩쓰는 ‘중년 셔플’ 열풍
“원, 투, 쓰리, 포! 발 뒤꿈치 들고 미끄러지세요!”
지난 4일 저녁 8시, 포항시 북구의 한 댄스 교실. 영하권의 칼바람이 무색하게 연습실 열기는 후끈했다. 빠른 비트의 음악이 흐르자 머리가 희끗한 중년들이 일제히 발을 구르기 시작했다. 뒤꿈치와 앞꿈치를 번갈아 옮기며 바닥을 미끄러지듯 움직이는 ‘셔플댄스’다.
2000년대 초반 배우 장근석 등이 유행시키며 젊은 층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이 춤이 최근 5060세대의 ‘삶의 비타민’으로 화려하게 부활하고 있다.
열풍은 수치로 증명된다. 지난해 8월 문을 연 이 수업은 입소문을 타더니 연말부터 수강생이 200여 명으로 폭발적으로 늘었다. 지역 기반 커뮤니티인 당근마켓 게시판에도 ‘함께 셔플 댄스 출 동네 친구 모집’ 글이 연일 올라올 정도로 확산세가 가파르다.
현장에서 만난 하유정 대한셔플댄스협회 포항 지부장(53)은 “50~60대 여성들은 자녀를 독립시킨 뒤 찾아오는 지독한 외로움, 이른바 ‘빈 둥지 증후군’을 겪는다”며 “이곳에서 비슷한 처지의 또래들과 땀 흘리며 노는 ‘커뮤니티’가 형성되다 보니 우울할 틈이 없다는 분들이 많다”고 귀띔했다.
실제로 수강생 김미정 씨(56)는 이 춤에 매료돼 인생의 2막을 다시 쓰고 있다. 초급반에서 시작해 최근 강사 자격증까지 취득한 김 씨는 “누군가의 할머니가 아닌 ‘선생님’으로 불리는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며 “셔플은 내게 운동 이상의 비타민”이라고 말했다.
중년 셔플 열풍의 비결은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다. 화려한 상체 율동이나 고난도 턴(turn)이 적어 무릎에 무리가 가지 않는 선에서 중년들도 쉽게 따라 할 수 있다.
이 같은 현상을 두고 전문가들은 중장년층의 라이프스타일이 ‘생존’에서 ‘유희’로 완연히 넘어왔다고 진단한다.
김정규 계명대 사회학과 교수는 “과거와 달리 유튜브나 카카오톡 등 SNS가 발달하면서 특정 문화가 세대 내에서 확산되는 속도가 매우 빨라졌다”며 “2030 세대가 ‘두바이 초콜릿’ 같은 유행에 민감하듯, 5060세대 역시 디지털 환경에서 동료 의식을 확인하며 소외되지 않으려는 심리가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김 교수는 경제적 배경을 핵심 요인으로 꼽았다. 그는 “지금의 5060세대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자산과 여유를 많이 가진 풍요로운 세대”라며 “먹고사는 절박한 문제에서 해방되자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재미’를 적극적으로 찾아 나선 결과”라고 분석했다.
글·사진 /단정민기자 sweetjmini@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