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오전 10시, 포항시 북구 육거리 광장. 3월의 꽃샘추위가 살을 에고 잿빛 구름이 낮게 내려앉았지만, 광장을 가득 메운 태극기의 기세는 꺾이지 않았다.
시민들의 머리에 질끈 둘러진 ‘대한독립’ 머리 끈은 107년 전 일제가 ‘특별 관리 지역’으로 선포할 만큼 삼엄했던 포항의 심장부를 다시금 일깨웠다.
포항 중앙동개발자문위원회가 주관한 ‘여천 3·1만세운동 재현 문화제’는 단순한 기념식을 넘어선 ‘역사의 복원’이었다.
하얀 두루마기를 입은 시민 200여 명은 1919년 당시 일본인 거주 비율이 25%에 달하고 헌병대와 경찰서가 밀집했던 ‘일본 통치의 본거지’ 여천 장터(현 소망교회 자리)를 향해 발을 내디뎠다.
당시 여천 만세운동은 기록이 증명하는 ‘경북 최초’의 거사였다. 장두대 행사추진위원장은 기념사에서 “주민 6500명 중 2400명이 참여해 40명이 숨지고 280명이 투옥된 처절한 사투였다”며 “일제의 총칼 앞에서도 물러서지 않았던 그 무명의 민초들이 오늘 우리가 누리는 자유의 뿌리”라고 강조했다.
행렬 속에서 목이 터져라 만세를 외치던 정두경 씨(66)는 붉게 상기된 얼굴로 태극기를 흔들었다. 정 씨는 “날씨가 춥지만, 나라를 되찾으려던 선조들의 절박함에 비하면 이 정도 추위는 아무것도 아니다”라며 “포항이 이토록 뜨거운 항일의 성지였다는 사실이 오늘따라 유독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대열의 한 축을 담당한 영일고등학교 3학년 안유람 군(19)의 눈빛도 사뭇 진지했다. 안 군은 “교과서 속 활자로만 보던 역사를 하얀 두루마기를 입고 직접 걸어보니 감회가 남다르다”며 “우리가 오늘 누리는 이 평범한 주말이 선조들의 목숨과 바꾼 소중한 선물이라는 것을 친구들과 함께 깊이 새겼다”고 전했다.
행진이 이어지는 동안 중앙상가 일대는 거대한 태극기 물결로 뒤덮였다. 회색빛 하늘과 대비되는 하얀 두루마기 물결은 도심의 삭막한 풍경을 압도했다. 길을 가던 시민들은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숙이거나 함께 주먹을 쥐며 화답했다.
종착지인 소망교회 앞마당에서 터져 나온 마지막 만세 삼창은 빌딩 숲을 지나 영일만 앞바다까지 닿을 듯 강렬했다.
이창우 포항시 북구청장은 “우리가 딛고 선 이 땅은 선열들이 목숨을 짚풀처럼 버려가며 지켜낸 고귀한 터전”이라며 “오늘 육거리에 울려 퍼진 숭고한 함성은 과거의 기록에 머물지 않고 포항의 미래를 깨우는 거대한 동력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글·사진 /단정민기자 sweetjmini@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