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은 객원기자의 ‘클래식 노트’
연말은 한 해의 끝에 대한 아쉬움과 새해에 대한 기대감이 교차하는 시기다. 크리스마스 캐럴의 흥겨움 뒤에 찾아오는 고요함 속에서 자신과 마주하는 음악을 듣는 것은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이때 음악은 단순한 배경이 아닌 마음을 정리하고 새 출발을 준비하는 위로가 된다.
연말에 어울리는 음악으로 하이든의 오라토리오 ‘사계’ 중 ‘겨울’을 떠올릴 수 있다. 황량한 자연 속에서 서로 의지하며 신의 인도를 갈구하는 모습은 노동과 성장을 넘어 성찰과 기다림의 단계로 향하는 인간의 모습을 상징한다. 자연의 리듬 안에서 한 해를 차분히 돌아보기에 적합한 음악이다.
슈베르트의 '교향곡 제8번 b단조 미완성' 또한 연말에 추천하는 작품이다. 이 곡은 교향곡이 당연히 도달해야 할 4악장의 완결을 향해 나아가지 않는다. 하지만 두 악장에서 멈춘 이 음악은 ‘끝내지 못함’을 결핍이나 실패로 규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표현해야 할 감정과 음악적 이야기를 다 했기 때문에 2악장으로 마무리했다는 평이 있다. 이 작품은 연말에 우리가 느끼는 아쉬움, 즉 ‘아직 다 끝나지 않은 삶’에게 ‘끝내지 못한 것이 실패는 아니다’라고 말한다.
피아노 음악으로는 슈만의 ‘어린이 정경’ 중 ‘트로이메라이’를 추천하고 싶다. 제목은 ‘어린이의 꿈’이지만, 실제로는 어른이 되어버린 우리가 잃어버린 감정을 돌아보게 하는 곡이다. 연말에 듣는 ‘트로이메라이’는 단순한 향수가 아니라, 앞으로도 지켜가야 할 마음의 방향을 조용히 일러준다.
그렇다면 새해 첫날, 1월 1일의 첫 곡은 어떤 음악을 들으면 좋을까. 새해의 음악은 결심을 강요하기보다, 새로운 시작을 잔잔히 열어주는 역할이면 충분하다.
이 역할에 가장 잘 어울리는 작품은 베토벤 교향곡 제6번 ‘전원’ 1악장이다. 자연을 묘사한 이 음악은 거창한 승리나 극적인 전환 대신, 평온한 걸음으로 새로운 하루를 맞이하게 한다. 새해의 아침, 창밖의 빛과 함께 이 음악을 듣는 순간, 우리는 다시 삶으로 걸어 들어갈 용기를 얻게 된다.
또 다른 선택으로는 클래식 현대음악 작곡가 아르보 패르트의 'Spiegel im Spiegel'을 들고 싶다. 이 곡은 거의 변화하지 않는다. 그러나 테마의 반복 속에서 미세한 음악의 차이를 감지하게 된다. 새해 역시 그렇다. 하루아침에 바뀌는 것은 없지만, 다시 시작된 시간 안에서 우리는 조금씩 변해간다.
여기에 비발디의 ‘사계’ 중 ‘봄’을 더한다면, 새해의 의미는 더욱 분명해진다. 비발디는 봄을 새의 노래와 얼음의 해빙, 생명의 귀환으로 묘사했다. 이는 단순한 계절 표현이 아니라, 다시 살아 움직이기 시작하는 시간에 대한 음악적 선언이다. 그래서 이 곡은 새해 첫날, 오전에 듣기에 적합하다. 새해의 시작을 ‘결심’이 아니라 생명력의 회복으로 이해하게 만든다.
최근에는 많은 사람들이 SNS를 통해 자신이 선택한 “새해 첫 곡”을 공유한다. 긴 설명 대신 한 곡의 제목만으로도 자신의 정서를 드러낼 수 있기 때문이다.
연말과 새해를 잇는 음악의 역할은 분명하다. 과거를 정리하고, 미래를 다짐하기보다, 지금 이 순간의 나를 이해하도록 돕는 것. 음악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다. 우리가 잠시 멈춰 귀를 기울이기만 하면, 시간의 끝과 시작을 가장 깊이 연결해준다.
/박정은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