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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늘진 삶의 슬픔을 품는 성찰과 위로

윤희정 기자
등록일 2025-12-30 17:44 게재일 2025-12-31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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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국 시인의 열 번째 시집 출간
반세기 시혼과 인생론, 삶의 근원 탐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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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 펴냄, 이상국 지음, 시집

한국 전통 서정시의 맥을 이으며 시의 지평을 넓혀온 이상국(76) 시인이 열번째 시집 ‘나는 용서도 없이 살았다’(창비)를 펴냈다. 

‘시인’으로서의 정체성과 ‘시 쓰기’의 의미를 묻는 철학적 사유를 담아낸 이번 시집에서 시인은 시력 반세기의 시론과 인생론을 펼쳐 지나온 삶을 조용히 되돌아보며 삶의 비의와 존재의 근원을 탐색한다. 

민족예술상, 백석문학상, 정지용문학상 등 다수의 문학상을 수상한 이 시인은 이번 작품에서 단아한 시어와 진솔한 언어로 삶의 그늘진 구석까지 포용하는 서정을 펼친다. “사람이 살려고/ 너무 애쓰는 일을 재앙”(‘핑계’)으로 규정하며, 가난 속에서도 삶의 소박한 가치를 발견하는 시인의 혜안이 이채롭다. “가난하면 사랑하는 자식들이 다툴 일이 없고/ 세상 떠날 때도 소풍 가듯 가벼워서 좋다”는 구절에서 드러나듯, 그는 고단한 현실을 초월한 듯한 여유와 체념 사이의 균형을 동시에 전한다. 또한 ‘저녁의 위로’에서는 “인간이라는 게 죽을힘을 다해 세상에 나와/ 어떤 사람은 평생 고기를 잡고/ 어떤 사람은 벽돌만 쌓다 간다”며 생의 덧없음과 유한함을 담담히 풀어낸다.

특히 “네게 내 인생의 대부분을 쓰고도/ 나는 용서도 없이 살았다”는 고백은 평생 시인으로 살아온 그의 내면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시인은 ‘시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며, “나의 시는 늘지 않는다// 인생이 늘지 않는다”(‘나의 시’)라며 시와 삶을 하나의 몸처럼 연결된 것으로 인식한다. 그럼에도 “시를 쓰면서도/ 시 같은 건 대단찮게 여기기도” 했으나, 끝내 “가진 게 시밖에 없”다는 자각에 이른 그의 모습은 예술가의 숙명을 떠올리게 한다.

이번 시집의 화두는 ‘슬픔’과 ‘위로’다. “저녁이다 슬픔들아/ 어둠의 등에 업혀 집으로 가자”(‘저녁의 위로’)라는 구절은 고단한 하루를 보낸 이들에게 전하는 은유적 위안이다. 시인은 “누가 울고 싶어 울겠으며/ 아프고 싶어 아프겠는가”라며 모든 존재의 고통을 공감하면서도, “어쩌다 온 세상에서/ 우리는 어떡해서든 살아야 한다”며 순응적 태도를 권유한다. 이는 “아무리 조그맣게 살아도 산다는 건/ 그 모든 걸 가슴에 묻는 일이고/ 남몰래 꺼내 보는 일”(‘어른은 울지 않는다’)이라는 깨달음으로 이어진다.

장석남 시인은 추천사에서 “오래 묵은 흙냄새와 살림살이의 낮은 물결 자국들이 스민 작품”이라고 평하며, “삶이 가벼울 리 없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기에 가능한 말”이라고 덧붙였다. 
유성호 문학평론가는 “시적 우보(牛步)의 고유한 위의(威儀)를 지닌 시집”이라며 “웅숭깊은 서정의 힘으로 작고 소박한 것들이 함께하는 사람살이의 본래면목을 노래한다”고 해석했다.

이상국 시인은 강원도 양양 출생으로 1972년 강원일보신춘문예 시 부문 당선을 하고, 1976년 ‘심상’으로 문단 데뷔했다. 한국 전통 서정시의 맥을 잇는 작품으로 독자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그의 시는 화려함 대신 투박함과 진정성으로 승부한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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