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을 자본의 기회로 둔갑시킨 법”, “독소조항 즉각 삭제하라” 정부서울청사 앞서 공동 기자회견···“재난자본주의의 교과서” 강력 비판
131개 시민·환경단체가 22일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경북·경남·울산 초대형 산불 피해 구제와 재건을 위한 특별법’에 대한 반대 입장을 밝혔다.
이들은 산불특별법이 산불 피해 복구라는 본래 목적을 벗어나, 각종 개발 특례 조항을 통해 산림 난개발을 조장할 수 있는 구조를 갖추고 있다고 주장하며, 법 개정과 시행령 보완을 촉구했다. 특히, 법안의 구조적 결함을 지적하며 대통령에게 재의요구권 행사, 즉 거부권을 요청해왔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밝혔다.
시민단체들은 법 제41조부터 제61조까지를 ‘산림투자선도지구 개발 패키지’라 부르며, 골프장·리조트·호텔·관광단지 같은 사업을 공익사업으로 둔갑시켜 각종 인허가를 일괄 의제하고, 환경영향평가 심의기한을 45일로 단축해 검토 절차를 무력화한다고 지적했다.
또한, 제55조는 민간사업자에게 토지를 수용하거나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제56·57조는 보전산지의 행위제한과 보호구역 지정 해제를 가능케 한다. 제30조는 산림 소유자의 동의 없이 ‘위험목 제거사업’을 시행할 수 있도록 해 사유재산권과 생태적 회복권을 침해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했다.
이날 녹색연합의 임성희 팀장은 “복구라는 명분 아래 환경영향평가를 간소화하고, 산지전용과 보전산지에서의 행위제한에 대한 특례를 보장하며, 위험목이라는 명목으로 벌채를 허용하면서 각종 위락시설을 위한 규제완화를 보장하고 있다”며 “재난을 기회로 삼아 각종 규제들을 그야말로 불태워버리는 독소조항은 반드시 삭제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생명다양성재단의 성민규 연구원은 “피해 주민을 돕겠다던 특별법이 난개발의 면허장이 돼 버렸다”며 “법이 통과되자마자 경북도지사가 골프장, 리조트 개발 계획을 발표한 것이 그 증거다. 불탄 숲이 곧 투자 기회가 되고, 재난이 돈이 되는 구조를 만들었다”고 비판했다.
시민 단체들은 법안의 심의 구조에도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시·도지사가 선도지구를 지정하고, 같은 시·도지사 산하 심의회를 통해 스스로 승인하는 구조는 중앙의 견제가 사라진 자기심의 체계이며, 행정절차라는 외피 속에 지자체 중심 개발권의 폭주를 제도화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더불어민주당 임미애 의원은 “관계부처 협의와 산림청 심의, 주민 의견수렴 절차를 의무화했으니 난개발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했지만, 시민단체들은 “심의회는 독립적 통제기구가 아니며, 관계부처 협의도 단순 통보 절차에 불과하다”고 반박했다.
그린피스의 최태영 캠페이너는 “이번 결정으로 한국 정부가 국제사회에 약속한 ‘2030년까지 보호지역 30% 지정’ 목표가 흔들릴 수 있다”며 “법안을 만든 산불특위와 여야 국회는 공동의 책임을 지고 독소조항 삭제와 개정 작업에 즉각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단체들은 이날 기자회견 직후 국회와 정부, 대통령실에 △국회는 즉시 산불특별법 개정 논의에 착수해 제30조, 제55조, 제56·57조, 제60조 등 개발 특례 조항을 전면 삭제할 것 △산림청과 환경부는 시행령 제정 과정에서 난개발을 실질적으로 차단할 수 있는 통제 장치와 주민동의 절차를 마련할 것 △이재명 대통령은 거부권 포기 결정에 대해 입장을 밝히고, 개발특례 조항의 문제를 공개적으로 재검토할 것 등을 골자로 한 공식 성명서를 제출하며, 독소조항이 개정되고 난개발을 막을 시행령이 제정될 때까지 지속적으로 감시하고 행동할 것이라고 밝혔다.
/피현진기자 phj@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