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시가 북구 흥해읍 칠포리에 있는 조선 전기 수군진성인 ‘칠포진성(漆浦鎭城)’에 대해 경북도지정 문화유산 승격을 추진하다 중단했다. 역사·학술적 가치가 높아 지역 차원의 보존과 연구가 필요한 상황이지만, 건축 등의 분야에서 규제받는 주민들이 강력하게 반발하기 때문이다.
포항시는 지난해 ‘포항 칠포진성 도지정 문화유산 지정·인정 자료보고서’를 경북도에 제출하며 승격 절차에 착수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칠포진성은 1515년(중종 10년)에 축성된 평산성으로 조선 전기 경상좌수영 관할 아래 영일만을 지키던 수군 만호진영이었다. 성곽은 둘레 1153척(약 350m), 높이 9척(약 2.7m)의 석성으로 쌓였고 성 안에는 우물 두 곳이 있었다.
서쪽 성벽에는 ‘正德十年乙亥造築城(정덕십년을해조축성)’이라는 명문이 남아 축성 연대를 명확히 보여준다. 현재 성곽의 약 60%가 남아있고, 외벽 최고 높이는 2.2m에 달한다.
칠포진성은 조선 전기 경상좌수영이 담당한 동해안 수군진성 중 가장 보존 상태가 우수한 유적이다. 축성 연대가 명확하고 구조가 온전해 학술적 가치가 높고 영일만 해안 방어체계를 보여주는 핵심 자료라는 평가도 나왔다. 오봉산 정상의 오산봉수(烏山烽燧)와 연계된 조기 경보체계로서 군사 통신망 연구에도 의미가 크다.
그러나 칠포진성이 도지정 문화유산으로 지정되면 보호구역 설정에 따른 건축·형질변경 제한 등의 규제가 따른다. 칠포진성의 성곽은 담장을 따라 이어지면서 골목길을 가로지르는데, 어떤 곳은 주택 벽과 맞닿아 있다. 해당 구간이 ‘보호구역’으로 묶이게 되면, 건축·증축·보수 등 주민의 생활 행위가 제약된다.
김성근 칠포1리 이장은 지난 7월 주민설명회에서 “성벽이 집 담장을 따라 지나가는데 경북도지정 문화유산이 되면 이주를 강요받는거나 마찬가지다”며 “수백 년 이어온 공동체를 돈으로 보상해 다른 곳으로 옮길 순 없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 마을은 성이 담장과 맞닿아 있어 규제가 곧 생계 제약”이라고 덧붙였다.
경북도는 칠포진성을 지정문화유산으로 승격하는 조건으로 주민설명회를 개최해 다양한 의견을 수렴할 것을 제시했는데, 오히려 주민들의 화를 더 돋우는 상황이 됐다.
포항시는 문화유산 지정 절차를 잠정 중단했다. 문화유산활용팀 관계자는 “학술적 가치가 큰 칠포진성을 도지정 문화유산으로 보호하는 것이 타당하다”면서도 “주민 공감대 형성 이후 다시 추진하겠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문화재 보존과 주민 생활권 사이에서 합리적인 타협점을 찾아야 한다고 충고했다.
권희홍 한국전통문화대학교 보존과학과 교수는 “문화유산 지정이 곧 규제가 되는 현실에서 주민 반발은 당연하지만, 보존과 생활권이 함께 보장될 수 있는 현실적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면서 “포항시는 마을해설사나 문화재 연계형 일자리 같은 구체적 지원책을 병행하는 등 주민이 체감할 수 있는 활용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글·사진/단정민기자 sweetjmini@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