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2025 경주 APEC 정상회의 양정웅 문화행사 예술감독
오는 10월 말 천년의 역사를 간직한 경주에서 열리는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의의 문화행사 예술감독으로 양정웅(57) 감독이 위촉됐다. 세계 21개국이 참여하는 주요 국제행사 문화행사의 지휘봉을 잡은 양정웅 감독은 2018 평창동계올림픽 개회식과 2024 한·아프리카 정상회의 만찬 문화공연을 진행하면서 전통문화에 IT기술을 접목해 한국문화를 알려 호평을 받은 바 있다. 본지는 일간지 최초로 양정웅 감독과 이번 APEC의 문화 예술 행사의 방향에 대해 심층 인터뷰를 진행했다.
‘신라의 미소’로 알려진 얼굴무늬 수막새 인물 캐릭터 활용
삼릉 숲 비롯한 천년고도 자연환경도 공연에 포함 시킬 예정
정상만찬 전후 과정 ‘빛의 여정 컨셉’ 다양한 장르 음악 계획
경주박물관 효율적 활용 아기자기하고 섬세한 K-문화 부각
양정웅 예술감독은 한국의 문화와 전통을 세계에 알리는 중요한 기회인 이번 행사 참여에 막중한 책임감을 느낀다면서 한국의 전통춤, 음악, 그림 등에서 나타나는 정중동의 철학을 공연에 담아내는 문화행사를 기획했다고 설명했다.
특히 경주의 독특한 문화 자산 중에서도 ‘신라의 미소’로 잘 알려진 경주의 유명한 보물 ‘얼굴무늬 수막새’의 문양을 인물 캐릭터와 영상에 담아내겠다는 구상을 설명했다. 또한 신라의 삼릉 숲을 비롯한 자연환경을 활용해 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진 무대를 연출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양 감독은 이번 행사에서 가장 중요한 이벤트 중 하나로 정상 만찬을 꼽으며, 만찬 전후의 과정 전체에 ‘빛의 여정’이라는 큰 주제를 붙여 하나의 컨셉으로 기획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 내용.
-경주와 인연이 깊다고 알고 있는데 어떤 인연이 있나?
△아버지가 경주 태생이고 본적도 현재 경주시 황오동이다. 어릴 적 방학 때면 할머니 집에 놀러온 추억이 있다. 이런 인연이 있는 터에 경주에서 열리는 큰 국제행사의 감독을 맡게 되어 더욱 뜻깊다.
-문예창작과 출신으로 알고 있는데, 이러한 무대 연출 역량의 밑바탕은 무엇인가? 배우 데뷔는 언제 했으며, 연극 출연은 얼마나 되나?
△부모님이 모두 문인이셨고, 나도 영화 연출과 연극배우 겸 연출을 목표로 문예창작과에 진학해 인문학적 기반을 다졌다. 영화배우는 1986년 고3 때, 연극배우는 1988년에 데뷔했다. 이후 극단 ‘여행자’를 창단하고 연극 무대에 섰다. 연극 출연은 많지 않고 주로 연출가로 활동했다. 내가 대표로 있는 극단 여행자는 2006년 한국 연극 최초로 세계 최정상의 무대인 영국 런던 바비컨센터 초청으로 ‘한여름밤의 꿈’을 공연했고 2005년에는 세계 최대 공연 축제인 영국 에든버러 페스티벌에 참가했다.
-연출 기법은 어떻게 익혔나? 연극 ‘페르귄트’, ‘파우스트’ 외에도 뮤지컬, 오페라, 미디어아트 분야에서도 활약했는데.
△유학 대신 현장에서 일찍 데뷔해 독학과 공연을 통해 익혔다. 공연을 하루 두세 편씩 보며, 전 세계의 희곡과 대본을 탐독했다. 극단 ‘여행자’를 통해 외국 극단과 협력하며 스페인, 인도, 일본에서 공연했다. 스페인에서는 약 1년간 머물렀고 인도에서는 인도 국립극장에서 현지 아티스트들과 협력해 ‘박코스의 여신들’ 작품에 출연했다. 일본에서는 효고 지방과 나고야 등지에서 약 6개월간 공연했다.
-2018 평창 올림픽 등 과거 주요 행사에서 얻은 교훈은 무엇인가?
△전통을 기반으로 하되, 동시대의 보편적 가치를 담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배웠다. 이를 바탕으로 이번 APEC 만찬 공연을 준비하고 있다.
-이번 정상회의 개최를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개최국으로서의 메시지는 무엇인가.
△올해 정상회의 주제는 ‘우리가 만들어가는 지속 가능한 내일: 연결·혁신·번영’이다. 이 주제 중에 ‘혁신’ 부분에 AI, ICT, 메타버스 등을 포함시켜 전통과 혁신이 어우러진 문화 콘텐츠를 준비하고 있다. 이러한 첨단 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한국의 문화적 가치를 전달하고자 한다.
-이번 경주에서 개최되는 APEC 정상회의는 세계적으로 중요한 행사다. 경주의 역사와 문화, 예술을 이번 문화 예술 행사에 어떻게 접목하고 구현할 계획인가?
△신라 경주는 천년 고도이자 세계 어느 도시와도 비교할 수 없는 문화와 예술을 누렸던 곳이다. 신라 시대의 전통적이고 문화적인 요소들을 공연에 많이 담아내려고 한다. 예를 들어, 신라 토기에 나타난 수막새 미소 이미지를 인물 캐릭터나 영상에 활용할 계획이다. 또한, 신라의 삼릉 숲과 같은 자연환경도 공연에 포함시킬 예정이다.
-삼릉 숲은 어떻게 활용할 계획인가?
△삼릉 숲을 포함한 자연환경을 통해 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진 무대를 연출할 것이다. 정상회의 만찬장인 국립경주박물관의 작은 공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해 한국의 디테일하고 섬세한 문화를 표현하려고 한다.
-이번 행사의 가장 큰 도전 과제는 무엇인가?
△경주박물관의 제한된 공간을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작지만 알차고 디테일한 한국의 문화를 잘 표현하는 것이 중요하다.
-정상회의 만찬 공연의 주제는 무엇인가?
△만찬 공연의 가제는 ‘빛의 여정’이다. 약 150명의 인원이 참여할 예정이며, 전통 악기와 현대 밴드를 포함한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사용할 계획이다.
-이번 공연에서 IT 기술은 어떻게 활용되나?
△AI(인공지능)와 같은 첨단 기술을 활용해 전통과 혁신이 어우러진 문화 콘텐츠를 준비하고 있다. 이는 APEC 주제인 지속 가능성과 혁신과도 잘 맞아떨어진다.
-준비 기간이 짧은데 가장 큰 도전 과제는 무엇인가?
△경주박물관의 공연 장소가 다른 나라에 비해 상대적으로 ‘콤팩트하다’. 이곳을 효율적으로 활용해 한국의 문화를 잘 표현하는 것이 가장 큰 과제다. ‘콤팩트하다’는 말은 규모가 크지 않지만 경제적이고 압축적으로 구성된다는 의미다. 국립경주박물관 옥외 전시장에 만찬장을 짓고 있으며, 이 작은 공간이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다른 나라의 공연 장소에 비해 경주박물관의 특징은 무엇인가?
△다른 나라들은 넓은 야외 공간에서 행사를 진행했지만, 우리는 만찬장에서만 보여줄 수 있는 알차고 디테일한 문화를 표현하려고 한다. 한국의 K-콘텐츠는 아기자기하고 섬세한 아름다움이 특징이기 때문에, 이를 잘 살리는 것이 중요하다.
-2018 평창올림픽 등 과거 주요 행사에서 얻은 교훈은 무엇인가?
△전통을 기반으로 하되, 동시대의 보편적 가치를 담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배웠다. 이를 바탕으로 이번 APEC 만찬 공연을 준비하고 있다.
-현재 준비 과정에서 미흡하거나 아쉬운 부분이 있다면 무엇인가?
△아직 준비 초기 단계라 구체적인 아쉬운 점은 없지만, 준비 과정에서 여러 도전이 발생할 수 있다. 평창 올림픽 당시 야외에서 바람이 부는 어려움 속에서도 드론 쇼를 성공적으로 만든 경험이 있다. 이번에도 미흡한 점을 강점으로 전환하는 연출법을 시도할 계획이다.
-무대 연출가에서 컨벤션 예술 분야로 영역을 확장하고 있는데, 그동안 어떠한 역량을 연마했고, 어떤 노력을 기울였는지 궁금하다.
△한·아프리카 만찬 공연 총감독과 네덜란드 국빈 방문 행사 예술 감독을 맡았다. 한국의 전통 예술과 문화를 세계에 알리고 K-pop과 K-콘텐츠를 통해 국가 브랜드를 강화하는 데 기여하고 싶었다.
-지금까지 한국의 대표적인 국제 문화행사를 기획해 왔는데, 앞으로 도전하고 싶은 분야나 영역이 있는지?
△APEC 경주 행사는 한국을 대표하는 큰 행사로, 많은 관심과 응원이 필요하다. 사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 개회식을 통해 어린 시절 꿈을 이뤘다고 생각한다. 이제 나의 목표는 한국 문화 예술의 브랜드화와 가치를 더 많은 대중에게, 특히 세계인들에게 알리는 것이다. K-pop, K-무비, K-드라마는 이미 많이 알고 있지만, 공연 예술 분야는 아직 더 발전할 여지가 크다. 나는 평창 동계올림픽 개회식이 그 시발점이었다고 생각하며, 앞으로도 많은 공연 예술가들의 작품이 K-공연으로 전 세계에 알려지기를 희망한다. 이를 통해 한국 문화 예술의 아름다움을 더 널리 전파하고 싶다.
-이번 행사가 한국의 외교와 경제 발전에 어떻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하나?
△한국의 문화 예술을 통해 APEC 회원국 간의 경제적, 외교적 관계를 부드럽게 하고, 한국의 문화적 가치를 전달하며 외교와 경제 발전에 기여하길 바란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