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일이라 늦은 저녁상을 차렸다. 친정에서 보내온 겉절이, 오이김치, 물김치에 지난주부터 콩잎김치가 새로 등장했다. 초록색 여린 잎이 존재감을 잃지 않고 푸릇푸릇 살아있는 물김치다. 압력솥에 방금 한 밥을 퍼서 빡빡장과 함께 쌈을 싸서 먹으니 콩밭을 가득 품은 듯 뿌듯하다.
일 년 내내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아니다. 딱 요맘때, 경상도에서만, 아니 모든 경상도가 아닌 포항 근처에서만 즐겨 먹는 음식이다. 안동이 고향인 나는 중학교 2학년에 포항으로 전학오며 처음 콩잎도 먹을 수 있다는 걸 알았다. 점심시간 친구의 반찬통에 얌전히 누운 노란 잎, 호기심에 한 잎 떼어 입에 넣었다가 질겅거리는 식감에 몰래 뱉어야만 했다. 깻잎도 아니고 이게 뭐냐고 물으니, 콩잎도 모르냐고 친구가 어이없어했다. 낙엽을 먹다니 놀라울 뿐이었다. 부드러운 깻잎과는 식감이 완전히 달랐다.
고향인 안동보다 포항에 더 오래 살다보니 이젠 노란 콩잎김치를 사랑하게 되었다. 젓갈과 제피 향이 가미된 맛은 밥도둑이다. 하지만 초록 콩잎을 맛있게 느낀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젊을 때는 특유의 풋내가 싫었다. 나이가 들면서 서서히 물들어 이젠 늦봄 잠깐 나오는 이때 열심히 찾아 먹는다. 제철 음식을 찾아 먹어야 한다고 몸에서 소리를 냈기 때문이다.
친정엄마는 벌써 이 백 재기 넘게 콩잎김치를 담궜다. 한 묶음을 엄마의 입말인지 포항 사투리인지 한 재기 두 재기 이렇게 사고팔았다. 해 뜨기 전에 새순을 따서 친정에 새벽 3시면 자루 가득 담아 배달해 주신다. 그것을 이웃 친구들과 나눈다. 벌써 세 번째 주문이라고 했다. 포항시 북구 흥해읍 초곡리에 콩 농사하시는 분들은 이틀에 한번 여린 순을 따서 내다 팔아 자식 다 키웠다고 했다. 콩보다 잎 농사였다. 그러다 어느 날 밭을 갈아엎어 가을콩을 심는다고.
푸른 콩잎 쌈을 싸던 남편이 서울 작은 아버님께 택배로 보내드리고 싶다고 했다. 오래 병석에 누워 입맛이 없으니 고향 음식이 그리운 것이다. 8년 전에 돌아가신 시어머님이 서울 시동생에게 매년 이즈음 보낸 고향 소식이었었다. 죽도시장에서 사서 보냈더니, 그 맛이 아니라 하셔서 올해는 친정엄마 손을 빌렸다. 넉넉히 담궈서 스티로폼 박스에 담아 서울로 보냈다.
만드는 방법을 물으니, 된장 풀고 양파 썰어 넣고 그럼 된다고 힘든 거 하나도 없다고 하셨다. 조금 더 자세히 말해달라고 하니 콩잎은 너무 씻으면 짓물러 특유의 풋내가 나서 살살 씻고 참쌀풀을 쑤어 국물을 준비한다. 된장을 풀고 양파를 채 썰어 넣고 숨이 죽을 때까지 그냥 놔둔다. 오랜 세월 몸에 익힌 방법이라 그냥 하면 된다고 ‘숩다’고만 하셨다.
함께 싸 먹는 빡빡장도 꼭 필요하다. 강된장이라고도 부른다. 다양한 채소와 된장을 이용해 만드는 걸쭉한 한국 전통 요리다. 주로 쌈이나 비빔밥에 곁들여 먹으며, 깊은 풍미와 감칠맛이 특징이다. 기본 재료 애호박, 양파, 대파, 청양고추, 버섯 등 다양한 채소를 잘게 다져 준비한다. 두부도 추가할 수 있다. 팬에 기름을 두르고 양파와 호박을 먼저 볶다가 된장을 넣고 함께 볶아준다. 쌀뜨물이나 해물 분말 육수를 자작하게 부어 다진 마늘, 고춧가루 넣고 끓여준다. 마지막에 청양고추와 버섯을 넣고 한 번 더 끓여 마무리한다. 된장을 너무 많이 넣으면 짤 수 있으니, 끓이면서 간을 보며 조절하는 것이 좋다. 빡빡장은 냉장고에 보관하면 다른 국물 요리에 활용할 수 있다.
콩잎에 따끈한 밥 올려 빡빡장 곁들여 먹으니 밥 한 그릇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설거지 후 손을 씻고 소파에 앉아 휴대폰을 잡다가 시큼한 향에 왼손 냄새를 맡았다. 콩잎김치가 그대로 거기 있었다. 작은 아버님이 그리워하는 고향 냄새다.
/김순희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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