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지기 지인의 승진 축하 방문 소회
세월이 흐른다. 아무리 긴 세월도 돌아보는 세월은 ‘하루반나절’ 느낌이다. 그 흐름 속에서 시절인연이 이어져 희로애락을 함께 쟁이며 힘들 때 마음 놓고 힘들다고 말할 수 있는 오랜 인연도 생겨난다. 그녀가 그렇다.
졸졸 흐르는 냇가에 놓여 진 정겨운 징검다리 건너 듯, 한발 한발 인생길 다독이며 함께 걸어온 30년 지기 그녀에게서 전화가 왔다. 특유의 침착하고 차분한 목소리로 전해진 “언니, 나 교장으로 발령 났어요….” 라는 말에 순간 뭉클함이 인다. 당연한 결과라 생각하면서도 “축하한다” 말하려니 목이 잠긴다. 장학사가 되었다며, 교감으로 발령이 났다며 전화가 왔을 때 까지도 담담한 마음으로 기쁜 마음 담뿍 담아 싱싱한 목소리로 축하 인사를 했더랬다. 열심히 살아 온 대가이리라.
있는 그대로를 즐길 줄 아는 그녀가 발령지 마다 너무 아름다운 곳이라며 한번 다니러 오라 말했지만 흔쾌히 그러겠다고 해놓고도 무엇이 그리 바빴던지 가지 못 할 일들이 번번히 생기며 ‘다음에’라고 미루었다. 그러나 이번엔 열일 제쳐놓고 가 본다. 더없이 행복해 하는 모습이 보고파 그녀가 근무하는 학교로 향했다.
면 소재지를 둘러싼 앞산 자락에 아담하게 터 잡은 학교가 너무 정겨워 보인다. 교장실에 들어서다 그녀의 이름이 새겨진 책상에 가로놓인 명패를 보는 순간 괜스레 울컥한다. 교육자로서 살아 온 그동안의 삶을 고스란히 품고는 묵묵히 잘 살아왔음을 대변해주는 듯하다. 출산율 감소와 도시 인구 집중화 등 다양한 이유로 학생 수가 많이 줄어 전교생 숫자와 선생님 숫자가 엇비슷한 소담스런 분위기는 외려 포근함을 느끼게 한다. 그녀는 첫 교장 발령지가 너무나 마음에 든단다.
점심시간 수돗가에서 나이 든 어르신이 양치하다말고 지나가는 우리에게 인사를 한다. 70을 넘기신 어르신은 올해 입학한 1학년 학생이란다. 예고 없이 또 가슴이 뭉클 한다. 졸업생은 누구나 3년 동안 쓴 시를 모아 한권의 시집을 갖게 한다는 국어선생님의 열정이 만학도 어르신에게도 예외 없어 ‘학교’를 제목으로 시를 쓴다. ‘학교 가는 것이 너무나/ 즐거워요/어렵기는 하여도 배움이 너무/행복하고/우리 반 친구들 너무 예뻐서/기분이 좋아.’
노년에 찾아오는 외로움은 무섭다. 아인슈타인이 “그토록 널리 알려지고도 이렇게 외롭다는 것이 이상할 따름이다”라고 말한 그 외로움은 누구에게나 마음속에 내재한다. 나이 잊고 중학생이 되신 어르신은 그 외로움을 너무 멋지게 다스리며 사시는 듯하다. 아니 외로움이 뭔지 모르실 듯하다.
오래된 교정과 달리 실내는 오밀조밀 새롭게 잘 꾸며져 있다. 복도를 지나며 인사하는 아이들의 표정이 하나같이 맑고 활기차다. 그녀만큼이나 학교에 있는 시간이 행복해 보이는 아이들을 보고 있자니 시민기자도 그냥 행복하다.
그녀와의 인연으로 작지만 내실 있는 그 학교에 잠시 머물며, 사랑으로 다가가는 선생님들의 열정이 아이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생각보다 크다는 걸 느낀다. 교육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 학교의 중요성과 필요성을 체감한다.
단풍 곱게 물든 가야산 자락에 숙소를 예약해 둔 그녀 덕분에 깊어가는 가을을 양껏 탐닉하며 잠시 소박한 행복을 누려본다. 부임하면서 심었다는 옅은 주황색 메리골드의 남실거리던 모습처럼 은은하게 스며들 교장선생님의 사랑이 소담스런 학교에 오래토록 충만하길 바라본다.
/박귀상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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