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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아, 너는 꽃길만 걸어라

엄다경 시민기자
등록일 2024-10-31 19:39 게재일 2024-11-01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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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공원 회전목마 앞에 서 있는 딸.

딸의 결혼 얘기가 오가자 기쁘기 보다는 걱정이 많아지는 건 무슨 연유일까. 곧 결혼이라는 세계에 들어서야 할 딸의 걸음이 어쩐지 나는 측은하고 안쓰럽기만 하다. 한 여자와 남자가 만나 가정을 이루고 자식을 낳고 살아가는 일은 가장 큰 축복이고 자연스러운 일인데 그 길을 먼저 살아본 사람으로서 딸이 앞으로 살아내야 할 고단함이 걱정되고 걱정되는 모양이다.

“사춘기 육남매들 말썽 피울 적이면 엄마는 말했다// 열 살까지는 부모 책임/ 스무 살까지는 반반 책임/ 스무 살 넘어서는 다 니들 책임이라고// 책임을 다해 살았다// 고 믿는 나도 그때의 엄마가 되어 사춘기 딸에게 말했다// 열 살까지는 내 책임/ 스무 살까지는 반반 책임/ 스무 살 넘으면 네 책임이라고// 스무 살 스무 살까지만 하고 엄마처럼 살았다// 보청기를 달고 전화로도 기차화통이신/ 여든다섯의 엄마는 여태껏 책임을 초과해/ 쉰셋의 늙은 딸 아침을 알람 중이시다 일어났냐/ 목소리가 왜 그러냐 아프냐 고단하냐 귀찮다고/ 끼니 거르지 말고 따순 아침밥 먹고 나간 자식들/ 안 삐뚤어진다 파김치 시어진다 다녀가라// 나는 엄마처럼 살지 않아야 한다// 두 딸이 스무 살 스무 살만 되면/ 희망하지 않을 거다 나 자신조차도”- 정끝별 시 ‘삼대 2’

우리 때만 해도 모든 여자들의 목표는 엄마처럼 살지 않겠다 였다. 엄마들은 자신의 이름도 잊고 나이도 잊고 그저 애들 뒷바라지와 남편 치다꺼리로 평생을 살았다. 그게 전부인 줄 알았고 그래야 하는 줄만 알았다. 자식 잘되는게 삶의 기쁨과 보람이었던 엄마들. 그 엄마의 고단한 삶만은 물려받지 않으리라 다짐을 하지만 어느 순간 세상의 여자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또 그런 엄마가 되어 있다.

첫 아이를 낳을 때 양수가 먼저 터져 입원해서 진통이 오길 밤새 기다렸었다. 전화를 받은 엄마는 버스 끊긴 시골이라 달려오지는 못 하고 밤새 얼마나 애를 태웠던지 다음날 병원에 왔을 때는 입술이 퉁퉁 부르터 있었다. 난 맏딸도 아닌 넷째딸이고 엄마에겐 다섯 번째 손주였는데도 말이다. 그리 애면글면 하는 성격이니 일곱 자식 걱정에 애간장이 다 녹아 쉰 일곱 그 한창 나이에 그리도 급히 훌쩍 가버리셨나 보다.

시인의 팔순 어머니도 아직 책임을 초과해 전화기에 대고 저리 기차화통이라시는데. 시인은 두 딸이 스무 살만 되면 누구도 희망하지 않으리라 다짐하지만 그러지 못할걸 알기에 저리도 다짐에 다짐을 하고 있는 건 아닐까. 엄마처럼 살지 않아야 된다고 계율처럼 되뇌이지만 숙명처럼 엄마들은 또 책임을 초과하고 있다. 딸이 스무 살의 곱절이 지나도 엄마들의 질긴 자식 걱정은 아무래도 끊이지 않을 것 같아 보인다.

/엄다경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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