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6년 ‘여성의 정년 55세’라는 대법원의 판결이 있기 전까지는 여성에게 결혼은 곧 퇴직이라는 것이 사회적 통념이었다. 이 판결로 ‘25세 여성조기정년철폐운동’과 ‘결혼해도 취업 할 권리’를 주장하게 되고 2005년에는 철통같던 부계혈통중심주의 해체로 여성도 세대주로 인정되며 호주제가 철폐된다.
그러나 사회는 여전히 가사노동과 육아의 책임은 여성에게 있다고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2022년 기준 초·중·교 교사 중 남교사가 없는 학교가 전국 107개 교이며 유아를 돌보는 어린이집 선생은 98%가 여성이다. 예전에 비해 가정문화가 많이 달라졌다지만 여전히 결혼과 출산은 경력단절로 이어지고 결국 여성일수록, 고학력자일수록, 젊은 세대일수록 결혼을 당위(當爲)로 생각지 않는데다 이혼에 대해서도 개방적이다 보니 결혼과 출산을 기피하게 되고, 이는 낮아지는 출생률과 함께 인구 감소라는 사회문제로 이어지고 있다,
문화는 시대마다 특정한 의도에 의해 만들어진다. 불교 문화권이었던 고려 시대는 재산을 아들·딸이 동등하게 나누어 받으며 제사도 형제자매가 돌아가면서 절에서 재(齋)를 지내는 윤행(輪行)의 문화였으나 유교 문화권에 들었던 조선 후기가 되면 장자우대 풍습이 만들어지며 제사를 지내는 장자를 위한 ‘장자우대차등상속제’가 생겨나고, 결혼은 여성이 남편 가문의 문화를 익히고 적응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친영제(親迎制)가 형성되어 오래된 부계전통을 더욱 강화하며 철저하게 남성중심 계보를 따르게 한다. 조선시대 유교적 여성상은 효를 강조하는 열녀효부(烈女孝婦)였다. 근대 이르러 19세기말 봉건적이고 가부장적인 억압에서 벗어나고자하는 신여성 등장으로 구여성과 구분되기 시작했고, 1930년 식민지 상황에서는 일본이 일제에 충성하는 황국신민을 키워내는 어머니이자 내조하는 아내로서의 역할을 강조하는 ‘현모양처(賢母良妻)’를 앞세워 신여성을 뒤로했다. 이후 1981년 가정복지국, 1983년 한국여성개발원 등에서 시작된 여성정책들은 여성들의 삶을 바꿔놓았고 더불어 남성들의 삶도 달라지며 가족문화에도 많은 변화가 계속되고 있다.
성평등은 일과 가사노동이라는 여성의 이중부담을 덜어주는 정책만으로는 안 된다. 가부장제 문화가 여전히 강고한 지금, 직장에서 남성이라는 이유로 여성보다 더 과도하게 일해야 하는 구조가 개선되지 않으면 남성 역시 힘들어져 우리 사회 전체가 힘들어질 것이다. 이러한 부분을 해소하기 위해 여성정책은 남·여 모두를 포용하는 성평등정책으로 확장되고 있다.
시대에 따라 다른 문화는 옳고 그름의 기준도 다르다. 가부장제와 장자우대, 열녀효부라는 전통문화에 익숙한 할머니 세대는 이제 남성과 여성이 모두 평등해지는 성차별 없는 달라진 사회를 받아들여야 한다. 편안한 노후를 즐겨야 할 할머니들이 아들·딸을 대신해 손자를 돌보며 제2의 육아활동을 시작하니 체력적으로 힘이 들지만 손자가 건강하게 잘 자라는 것이 할머니 행복의 한 부분이기도 하므로 도와주지 않을 수도 없다. 달라지는 문화를 이해하고 잘 적응한다면 귀한 손자를 돌봐주는 일 또한 즐겁지 아니하겠는가. /박귀상 시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