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래기·납작하게 썰린 무도 실에 꿰어 처마 밑에<br/>양파망에 넣어져 대롱대롱 매달려 익어가는 메주
겨울이 가까이 왔다는 걸 알 수 있는 풍경 몇 가지가 있다. 이제는 잊혀져 가는 풍경이지만 주택가 골목 담벼락, 대문 사이로 보이는 시래기가 달린 풍경이다. 시퍼런 무청과 배춧잎을 새끼줄이나 노끈으로 엮어 볕 좋은 곳에 바짝 말린 시래기는 삶은 후 볶아 먹거나 된장국에 넣어 먹기도 한다.
시래기와 함께 납작하게 썰린 무도 실에 꿰어 빨랫줄이나 처마 밑, 옥상이나 된장독 위에 한자리를 차지하곤 했다. 그러고 보면 배추와 무는 배추김치, 총각김치, 깍두기, 섞박지 혹은 무말랭이로 쓰이고 마지막 남는 부분까지도 시래기로 변신해 밥상 위에 올라 알뜰히 쓰임을 다하는 채소다.
안동시 목성동 주택가 골목길을 거닐다 열린 대문 사이로 보이는 겨울 초입의 풍경에 발걸음을 멈춘다. 무청을 엮어 만든 시래기와 양파망에 넣어져 대롱대롱 매달려 해바라기를 하고 있는 메주가 정겹게만 보인다. 김장 김치와 말린 시래기로 긴 겨울 부식거리 걱정을 덜었던 노부부는 지금도 여전히 직접 담근 김치와 된장으로 타지 생활하는 자식들의 밥상을 든든하게 책임지고 있다.
아파트와 달리 주택가의 월동 준비는 더욱 분주하다. 수도 계량기 동파 방지를 위해 커버를 씌우거나 모포로 감싸고 외풍 차단을 위해 문풍지를 바르고 유리창엔 단열 뽁뽁이를 부착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 어떤 월동 준비보다도, 무청이 있어도 말릴 곳이 마땅히 없는 아파트와 달리 이웃집 담벼락 혹은 이웃집 옥상 빨랫줄에 걸리기 시작하는 시래기를 볼 때면 골목길의 월동 준비가 시작됐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백소애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