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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 고운사의 불두화

김순희 시민기자
등록일 2023-05-09 19:29 게재일 2023-05-10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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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두화가 만발한 고운사.

절마다 하얀 꽃이 피기 시작했다. 꽃은 주먹만한 크기로 가지마다 복스럽고 탐스럽게 달렸다. 무거울 정도로 풍성하게 펴 빗물을 머금어서 가지가 휠 정도이다. 5월에 들며 자주 봄비가 내려 꽃을 피우려고 준비한 불두화에게 영양분을 넣어주는 듯하다. 처음 꽃을 피울 때는 연둣빛이다가 점점 하얀빛으로 변한다. 6월 꽃이 질 무렵엔 누런빛이 되어 떨어진다. 꽃을 오래 볼 수 있어서 좋다.

의성 고운사 가까이 가면서부터 가로수가 하얀 불두화이다. 은행나무 가로수 그늘에 키 낮은 불두화가 앉아 잘 어울린다. 가로수 좌측에 최치원 문학관 건물이 있고 그곳에서 시 쓰기 행사가 있다고 플래카드가 걸렸다. 최치원의 호가 ‘고운’이다. 그러니 고운사가 최치원과 깊은 사연으로 엮여있을 것이다. 궁금해하며 다다른 주차장 둘레에도 빙 둘러 몽싯한 꽃들의 향연이다.

차를 세우고 절까지 걷기로 한다. 걷기 명상을 하라고 그 옛날 최치원이 걸었던 흙길을 걸어 보라고 안내판이 걸렸다. 키다리 소나무와 아기단풍나무가 길 양옆으로 줄지어 서서 서로 머리를 맞대고 있다. 덕분에 시원한 그늘이 만들어져 걷기에 더 좋다. 비가 오지 않는 날에 맨발로 걸으며 최치원의 향기를 느껴보아도 좋겠다.

최치원은 12세에 당나라로 유학 갔을 정도로 뛰어난 인재였지만, 6두품이라는 신분이라 신라에서 성골 진골과 겨루기는 힘들었을 터이니, 당나라에서 공부하기로 했을 것이다. 유학 6년 만에 당의 빈공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였다.

귀국 직후 당에서 쓴 글을 모아 헌강왕에게 바쳤던 ‘계원필경(桂苑筆耕)’은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개인 문집으로 꼽히며, ‘삼국사기’에 실려 있는 ‘난랑비서(鸞郎碑序)’는 신라 화랑도의 사상적 기반을 말해주는 자료로 주목받는다. 경주 최씨의 시조로 모셔지고 있다.

신라 신문왕 원년(681년)에 의상조사가 창건한 사찰로 창건 당시는 고운사(高雲寺)라 하였으나 200여 년 뒤, 고운(孤雲) 최치원이 이곳에서 수도하면서 가운루와 우화루를 지은 후 그의 호를 따서 고운사(孤雲寺)라 하였다.

백당나무를 개량한 불두화가 연수전 앞에 만발했다. 꽃의 모양이 부처의 머리처럼 곱슬곱슬하고 부처가 태어난 4월 초파일을 전후해 꽃이 만발하므로 불두화라고 부르고 절에서 정원수로 많이 심는다. 무성화이므로 열매를 맺지 않아 그 의미로 절의 정원수로 많이 심다가 탐스런 꽃에 반해 요즘엔 집 정원에도 많이 눈에 뜨인다.

꽃 모양이 수국과 비슷해서 많이들 수국이려니 한다. 잎의 모양으로 구분한다. 수국의 잎은 깻잎 모양이고 불두화는 세갈래로 나뉘었다. 한방에서는 팔선화라고 부른다. 잎과 꽃 뿌리는 약재로 쓰이며 상처를 치료하고 소변을 잘 나오게 한다. 진통의 효능이 좋고 잘 놀라는 사람에게 처방한다. 잎과 꽃과 뿌리를 달여 마시도록 한다.

남다른 능력을 지녔으면서 자기 뜻을 다 펼치지 못하고 은둔하며 여생을 보낸 최치원이 열매를 맺지 못하는 불두화와 닮았다. 그래서인지 고운사 곳곳에 하얀 꽃 무더기들이 놓여 깊은 골짜기를 환하게 밝힌다.

5월의 경북 의성은 고운사와 더불어 볼거리가 다양하다. 조문국 박물관 앞에 조성된 작약꽃밭에서 인생샷을 찍고, 사촌 전통마을의 가로숲에서 힐링도 하고, 빙계계곡에 가서 더위를 식혀봐도 좋다. /김순희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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