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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련과 함께 찾아온 경주 ‘오릉의 봄’

박선유 시민기자
등록일 2023-03-26 18:00 게재일 2023-03-27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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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손들이 준비한 춘향대제 눈길<br/>노점상까지 가세해 축제 분위기<br/>셔터에 놀라 뛰는 고라니도 볼만<br/>40대 넘는 관광버스 주차장 포화
숭덕전에서 춘향대제가 진행되고 있다.
목련이 먼저 봄을 알렸다. 사계절 내내 조용한 오릉이 가장 분주한 때다. 사람들은 갓 피어난 하얀 봄을 찍기 위해 여기저기서 셔터를 눌러댄다. 덩달아 담벼락을 보호색 삼아 쉬고 있던 고라니들도 이리저리 뛰어다니느라 바빠졌다.

오릉의 봄은 능 주인을 찾아 전국에서 온 후손들이 준비한 ‘춘향대제’로 대표된다. 대제는 성대하게 치르는 큰 제사를 일컫는다. 이날 경주를 뿌리로 둔 성씨들인 김, 석, 박씨가 모시는 숭혜전, 숭신전, 숭덕전 세 군데서 함께 춘향대제가 열렸다.

필자는 그중 숭덕전(문화재 자료 제254호)을 방문했다. 숭덕전은 신라 시조왕인 박혁거세의 위패를 봉안한 국전이다. 숭덕전의 ‘숭(崇)’과 ‘전(殿)’이 왕을 모시는 곳이란 점을 알려준다. 세종 11년(1492년)에 건립되었으나 선조 25년(1592년)에 임진왜란으로 소실됐다. 이후 수차례 다시 지어져 현재의 숭덕전은 영조 11년(1735년)의 모습이다. 가을에 열리는 ‘추향대제’에 비해 규모는 작지만 40여 대가 넘는 대형 관광버스로 주차장은 만석이다. 그리고, 평소 볼 수 없던 노점상까지 가세해 완전한 축제 분위기다.

오전 10시쯤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대형스크린으로 행사가 생중계 되고 있었다. 내부에서는 전참봉, 초헌관, 집례관, 진행참봉 등이 엄숙한 분위기로 대제를 봉행했다. 춘향대제 봉행 일정은 아침 6시 축문집필(사축·寫祝), 대축관 개복, 정전(신위전), 7시 조반, 9시 20분 오집사 예복 개복 후 예빈관 앞 집결, 9시 30분 상견례, 오집사(초헌관, 아헌관, 종헌관, 대축, 집례 등 다섯 제관)및 참제원, 9시 40분 숭덕문, 조흥문, 홍살문 경유 숭덕전 입전, 10시 춘향대제 봉행(숭덕전), 11시 10분 음복 후 해산으로 이루어진다.

안으로 들어가지 못한 사람들 중 일부는 입구에 서서 소원을 빌었다. 먼 길을 왔으니 조상 덕 바라는 마음이 무리는 아닐 터. 그분이 존재했던 시간과 지금의 시간 사이 틈이 길다 보니 조상이라는 느낌보다 신앙에 가까운 느낌이다. 하지만 분명 피를 물려받은 사이니 어느 신앙보다 가까운 존재다.

한 시간여 행사가 끝나자 붉은 깃발을 든 선두를 따라 사람들이 이동했다. 여느 때 같으면 금지구역인 능 바로 앞까지 갈 수 있는 특별한 날이다. 유독 눈에 띄는 팀이 보였다. 맞춰 입은 붉은 조끼가 초록 잔디와 만나 시선을 끈다. 그 팀을 선두로 여러 무리의 자손들이 자리를 바꿔가며 능 앞에서 기념촬영을 했다. 그리고 몇몇은 소풍 나온 가족처럼 돗자리를 깔고 앉아 여유를 즐겼다.

대부분 고령자들이다 보니 걸음이 느리다. 그럼에도 한 뼘 짜리 얕은 울타리를 넘어 들어가지 않는다. “양반이 담장을 넘어서야 되겠는가? 출입구로 가세. 허허...” 일흔 이상으로 보이는 한 분이 울타리 앞에서 망설이는 일행에게 농담처럼 말씀하신다. 숨을 한차례 고르시더니 느린 걸음으로 한참을 둘러 출입구까지 걸어가셨다.

왕을 지키는 사람들이 남아있는 곳, 또한 세계 희귀종인 고라니를 바로 앞에서 맞닥뜨릴 수 있는 곳 오릉. 이보다 특별할 수 있겠는가?

/박선유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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