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경산에서 2대째 대장간을 운영하고 있는 안두성(80) 야장을 만났다. 큰 키에 묵직한 망치소리를 내고 있는 안두성 야장은 얼핏 보기엔 청년을 연상시키는데 올해 여든이라고 해서 깜짝 놀랐다.
경산시 삼북동 안성공업사는 2대를 이어 온갖 금속 제품의 생산과 수리를 담당해온 곳이다. 군대를 마친 안 야장은 장남이라는 이유로 24살 나이에 아버지의 대를 이어 대장간 일을 배우기 시작했다. 이 일을 하며 동생들과 1남2녀 자식들을 뒷바라지했다.
젊었을 때는 각종 농기구를 제작해 납품도 많이 했다. 장사가 잘되니 작은 도시였던 경산에도 압량을 제외한 면 단위마다 대장간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변하는 세상과 더불어 지금은 대부분의 대장간이 쇠퇴의 길에 들어섰다.
안 야장은 “경운기가 생긴 이후로 대장간이 사라져갔고, 각종 금속기구를 만들던 망치소리도 사라지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다행인 건 아버지의 고생을 알고 있는 자녀들이 잘 자라 원만한 가정을 이뤄줬기에 여든이 된 지금까지도 평생 천직인 대장간 일을 계속 할 수 있었다.
작업 현장에서 안두성 야장은 농기구를 들어 보이며 “이것들 하나하나 모두 불에 달구고 망치로 두들겨 직접 만든 겁니다. 근데 이제 내가 나이가 들어 일하는 게 힘에 부치고, 중국산이 대량으로 들어와 헐값에 거래되니 대장간을 유지하지가 갈수록 힘들어요. 내가 문을 닫으면 호미자루 고쳐달라고 찾아오는 손님들은 어디로 갈지...”라며 말끝을 흐렸다.
“후계자를 찾으면 될 것 아닌가요”라고 물었다.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나야 당연히 후계자를 키우고 싶은데 누가 옵니까? 하루 종일 뜨거운 불 앞에 서있는 일을 요즘 젊은이들은 하려고 하질 않아요. 명장이나 명인 등 국가에서 인정해주는 자격이 있으면 정부지원금을 받을 수도 있다는데, 그것도 후계자가 있을 때나 가능하다고 하네요. 안타깝지만 이제는 대장간 문을 닫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어요.”
안 야장이 운영하는 안성공업사까지 없어진다면 경산은 물론 인근 도시 어디에서도 이제는 대장간이 찾아보기 힘들어질 것이다.
우리 민족의 뿌리는 농경사회였다. 농사로 온 가족이 먹고살아야 했던 시대에는 호미 한 자루도 얼마나 소중했던가. 무쇠도 녹이는 뜨거운 화로의 불꽃도 세월의 변화 앞에 속수무책인가 싶어 마음이 무척 씁쓸했다.
/민향심 시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