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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 격전지 기계·안강지구 전투 전적비

이순영 시민기자
등록일 2022-06-21 19:35 게재일 2022-06-22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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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시 북구 기계면 성계리 입구에 세워져 있는 한국전쟁 격전지 기계·안강지구 전투 전적비.
포항시 북구 기계면 성계리 입구에 한국전쟁 격전지 전적비가 있다. 전적비를 중심으로 인근 지역에서 벌어진 치열한 전투로 희생된 젊은이들의 고귀한 넋을 기리고자 2016년 건립한 비석이다. ‘기계·안강지구 전투’는 1950년 8월 9일부터 9월 22일까지 벌어진 전투를 말한다.

기계·안강은 전략적 요충지였다. 동쪽으로 포항(13㎞), 서쪽으로 영천(24㎞), 남쪽으로 경주(14㎞), 북쪽으로 청하(17㎞)로 이어진다. 북한군은 포항을 점령한 후 연화봉·운제산을 거쳐 경주로 진출하거나, 양포·감포·울산으로 이어지는 해안선으로 남하할 계획이었다.


기계·안강 지역이 북한군에게 점령되면 포항·경주·영천·대구가 매우 위험하였으며, 영일비행장이 있는 포항이 차단될 위기에 처해진다. 이에 우리 군은 최후 방어선을 지키기 위하여 모든 전력을 투입하였다.


북한군 제12사단과 제766유격부대의 공격에 맞서 수도사단·제3사단과 독립기갑연대·2개 유격대대·해군육전대·민부대·학도병 등 동원가능한 모든 전력을 투입하여 필사적으로 항전하였다. 그 결과 고지의 주인이 열여섯 번이나 바뀌고, 국군 제17연대는 소대장·중대장, 3개 대대장이 전사와 부상으로 인해 지휘자가 하루에도 수차례 바뀌고, 나중에는 일등중사가 소대장 임무를 맡기도 했다. 그야말로 아비규환의 피비린내 나는 격전장이었다. 17연대는 격전지인 곤제봉 전투에서 최후의 승자는 되었지만 수많은 목숨을 잃었다.


올해는 한국전쟁 발발 72주년이 되는 해이다.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쉬는‘휴전(休戰)’기간이다. 그날의 피비린내 나는 동족상잔(同族相殘)으로 희생된 영웅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순영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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