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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립과 두려움… 우리는 다시 연결될 수 있을까?

윤희정기자
등록일 2022-03-31 19:51 게재일 2022-04-01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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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이라는 가능성’<br/><br/>윌 버킹엄 지음·어크로스 펴냄<br/>인문
‘낯선 사람’이 곧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은 모두가 안다. 그런데도 우리는 낯선 이를 마주하면 몸을 움츠린다. 언젠가부터 우리는 타인을 환영하기보다 의심하고, 안전을 위해 단절을 마다하지 않는다.

고립과 두려움을 넘어 연대와 신뢰감을 되살릴 수 없을까? ‘다름’ 앞에서 삶을 열어젖힐 때의 즐거움과 가능성을 어떻게 되찾을 수 있을까?


‘타인이라는 가능성’(아크로스)은 그 방법을 찾기 위해 문학과 철학, 인류학과 역사학을 가로지른 지적 탐사의 기록이다. 영국 출신의 철학자이자 인류학자인 저자 윌 버킹엄은 이 책에서 타인을 맞이하고 받아들일 때의 위험과 가능성을 전방위로 탐구한다. 고대의 대서사시 ‘오디세이아’에 그려진 낯선 만남들을 살펴보고, 몽골 유목민의 이방인 맞이 예법이 복잡해진 이유를 해석하며, 풍성한 만찬과 선물에 담긴 인류학적 의미를 포착하고, 다문화 도시에서 인종과 국적이 다른 이들과 이웃하게 될 때 실제로 벌어지는 일들을 기록했다.


낯선 사람에 대한 경계심은 비이성적 감정일까. 저자는 그렇지는 않다고 말한다. 오히려 낯선 사람에 대한 공포를 의미하는 제노포비아(xenophobia)는 ‘오디세이아’나 ‘길가메시 서사시’의 주요 테마 중 하나였을 정도로 이미 오래전부터 인간 삶에 깊숙이 뿌리내려 이어져 왔다며 삶을 지키기 위해 불확실성과 거리를 두는 것은 합리적 행위라고 말한다.


이 책은 낯섦이 불러일으키는 합당한 불안을 살피는 한편, 미지의 타자를 환대하며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온 우리의 다종다양한 실천들을 탐구한다.


낯선 사람을 맞이하는 방법과 관련해 나라마다 다양한 문화가 존재한다. 몽골에서는 타인의 집을 방문할 때 오른발부터 디뎌야 하며, 외투의 소매는 손목까지 내리고 모자는 쓰고 있어야 한다. 고기를 대접받으면 적은 양을 입에 넣은 뒤 양이 많고 넉넉한 것처럼 과장하며 씹는 것이 관례다.


물론 모든 낯선 만남이 늘 별 탈 없이 마무리되는 것은 아니다. 때때로 환대는 갈등으로 이어지고, 심지어 폭력으로 비화하기도 한다. 저자가 여행 중 머문 적 있는 불가리아의 한 마을에서는 주인의 대접을 사양하는 손님을 곤봉으로 때려 쫓아내는 관습이 전해 내려오고 있었다고 한다. 주인의 명예를 실추시킨다는 이유에서라는 것이다.


이스마일 카다레의 소설 ‘부서진 사월’를 통해 우리에게도 익숙한 알바니아 북부의 예법 ‘카눈(Kanun)’에 따르면, 지위나 명예가 손상되면 반드시 피로 복수해야 한다. 이들 예법은 낯선 만남에 친절과 적대감, 환영과 폭력이 동시에 잠재한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하지만 저자는 낯선 만남에 도사린 위험보다 그로부터 얻게 되는 보상에 더 초점을 맞춘다. 낯선 이에 대한 불안감이 좀 더 열리고 관대한 마음으로 바뀌는 것이다.


이외에도 저자는 관계에 즐거움과 신뢰를 더해 공동의 미래를 여는 데 이바지하는 선물의 힘, 낯선 사람과 어울릴 때의 지침이 돼준 논어 속 예법들, 성 베네딕토와 이마누엘 칸트가 생각한 적절한 만찬의 규칙, 오늘날 남아 있는 작별과 배웅의 관습을 차례차례 탐구해나간다.


저자는 무수한 사람들이 현재 앓고 있는 외로움의 고통을 해소하는 것이 책의 집필 동기 중 하나라고 말한다.


“외로움, 즉 주변부에 위치할 때의 느낌은 위협에 대한 반응을 강화한다. 우리는 외로울 때 타인을 가장 불신하는 경향을 보이며, 타인을 불신할 때 가장 큰 외로움에 휩싸인다. 관계를 맺을 가능성은 낮아지고, 위험을 회피할 가능성은 더욱 커진다.”(297~298쪽)


저자는 프랑스 철학자 에마뉘엘 레비나스의 말 “낯선 이와의 관계는 곧 미래와의 관계”(12쪽)를 인용하며 환대는 고독과 불신, 적대를 해소하는 방법일 뿐 아니라 새로운 미래를 열어젖히는 단초이기도 하다고 강조한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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