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헌공원을 출발해 아흔아홉 칸 고택이 있는 덕천마을을 거쳐 약 400살 먹은 느티나무가 있는 신기마을을 지나 청송한지체험장에 이르는 11.5킬로에 이르는 길이다. 짧지 않은 거리지만 대부분 평지라 걷기에 수월하다. 곳곳에 유서 깊은 명소가 펼쳐져 있어 자주 걸음을 멈추게 되는 구간이기도 하다.
청송은 2011년 6월 국제 슬로시티로 공식 지정되었다. 자연과 환경, 인간이 조화를 이루고 여유롭게 살자는 취지의 국제 슬로시티 철학에 딱 맞춤한 곳이다. 공장 굴뚝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느림보 마을에서 사람들은 농사에 기대 조용히 살아간다.
슬로시티길에서 만나는 신기리 느티나무는 천연기념물 192호다. 1660년경 인동장씨 입향시조가 심었다고 전해진다. 봄에 나뭇잎이 어느 쪽에서 먼저 나오느냐에 따라 한 해 농사의 풍·흉을 점쳤다고 하니 나무에 대한 동네 사람들의 믿음을 알 수 있다. 당산목으로 지정하여 정월 보름이면 정성껏 동제(洞祭)도 지낸다. 요즘은 보기 귀한 풍속이어서 사진가들은 멀리서도 찾아온다. 높이 10미터, 수관폭 24미터, 가슴높이 둘레 8.4미터인 이 오래된 나무에게 사람들은 마을의 안녕을 빌며 지금껏 살아왔다.
잠시 번잡한 도시를 떠나 청송 슬로시티길을 걸으며 여유와 낭만을 느껴보면 어떨까. 속이 텅 빈 느티나무가 전하는 위로를 듣다 보면 따뜻한 봄은 어느새 가까이 와 있을 것이다. 근처에 진성이씨 시조묘가 잘 관리되고 있어 조선의 대학자 퇴계 선생의 뿌리를 살펴보는 행운도 누릴 수 있다. /박월수 시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