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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소의 뿔은 고독하다 - 청도 대비사(大悲寺)

등록일 2019-10-28 19:32 게재일 2019-10-29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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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비사 대웅전과 멀리 보이는 억산. 대비사는 경북 청도군 금천면 박곡길 590에 위치해 있다.

중년의 여자가 홀로 걷는다. 아무런 보호 장치 없는 차로를 묵직한 배낭 하나 메고 걷는 모습이 잘 여문 가을을 닮았다. 마른 꽃잎 같은 여인이 발걸음을 뗄 때마다 탑이 쌓인다.

여인은 큰 길을 따라 걷고 나는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을 안고 대비사를 향해 마을 어귀로 들어선다. 눈길 닿는 곳마다 해묵은 그림처럼 정감 넘치는 가을 풍경이 기도가 되어 따라온다. 그곳이 비록 초행길이라 할지라도.

길은 대비지 푸른 어깨를 타고 굽이굽이 이어진다. 수심 깊은 호수에는 하늘의 낮별들 죄다 내려와 반짝이며 수다를 떨고, 일찍 물든 단풍은 무심히 붉고 외롭다. 내 안에 숱한 그리움들 몰려나와 무언가를 찾아 헤맨다. 깨달음이란 없던 것을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있는 것을 확인하는 것, 호젓한 물결이 내게 속삭인다.

호수와 헤어지고 골짜기로 접어들 때, 일주문과 천왕문을 대신하는 사천왕상이 길을 막는다. 심란하고 소소한 탐욕들 죄다 접어 호수 위로 띄워 보낸 뒤라, 나를 검문하는 사천왕상의 눈빛은 한없이 너그럽다. 용소루 처마 끝에서 빈몸으로 허공을 가르며 울어대는 풍경처럼 오늘은 몸도 마음도 가볍다.

누하진입식의 용소루를 지나 너른 마당을 가로지르면 적당한 높이의 기단 위에서 강렬한 눈빛이 나를 맞는다.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다포식 맞배지붕의 조선 중기 건축물인 보물 제 834호 대웅전이다. 오랜 그리움 품고 피어나는 한 떨기 꽃처럼 대웅전의 자태는 단아하면서도 흔들림이 없다.

텅 빈 마당에 서서 대웅전을 바라본다. 눈 밝은 사람이 아니면 찾아올 수 없는 이곳, 영겁의 세월을 외로이 떠돌았을 독백 하나, 허기진 날들을 견디고 비로소 닻을 내린다. 인연의 끈을 붙잡고 다가오는 숨결처럼, 전생에 한번쯤 다녀갔을 법한 절이다. 어쩌면 나는 이곳에 오기 위해 그토록 많은 사찰을 스쳤던 것은 아닐까.

절은 신라 진흥왕 18년(557년) 한 신승이 호거산에 들어와 대작갑사(현 운문사)를 중심으로 오갑사(대작갑사, 천문갑사, 소작갑사, 가슬갑사, 소보갑사)를 지었는데 서쪽의 소작갑사가 오늘날의 대비사다. 진평왕 22년에 원광국사가 중창하며 대비갑사로 바꾸었다는데, 불교의 대자대비(大慈大悲)라는 뜻으로 지어진 것이라고도 하고 신라 왕실의 대비가 수양을 위해 이 절에 오랫동안 머물러 대비갑사로 이름을 바꾸었다고도 한다.

호거산 품안의 박속마냥 적당한 크기의 절이 말없이 나를 안아주고 대웅전은 길고 길었던 침묵을 위로하듯 손을 내민다. 빨려들 듯 법당으로 들어가 겨우 삼배의 예를 갖춘다. 이 아늑하고 뜨거운 기운의 정체는 무엇일까. 대웅전이 내 안으로 성큼 들어오고 나는 대웅전의 품에 안긴다.

요사채는 인기척이 없다. 새로 지은 듯한 뒷산 선원은 가을날의 빈집을 지키듯 허공만 응시하고, 감로수 떨어지는 소리가 염불을 대신해 천년고찰을 밝힌다. 고색창연한 단아함과 깊고 그윽한 우수가 겹쳐 기품이 묻어난다. 안쓰러움이나 비굴함 따위는 결코 허락하지 않을 듯 간결하고 남성적이다. 스스로의 결을 지켜내기 위해 묵언수행하며 고독을 사랑하는 사찰이 마음에 든다.

시대에 편승하며 속세와 물꼬를 트는 일에 중독된 생기발랄한 사찰들과는 달리, 사찰로서의 본질과 정체성을 놓치지 않고 도약하려는 꿈틀거림이 보인다. 절 뒤편에 우뚝 솟은 기개 넘치는 억산의 형세도 대비사와 닮았다. 대웅전의 시선은 앞산 너머 운문사를 향해 있지만, 승천하는 용의 품에 안겨 절대적인 자유를 꿈꾸고 있는 것 같다.

입구를 지키는 느티나무 옆 오솔길을 따라 11기의 고승대덕들의 부도밭에 들어서면 가을이 물들고 낙엽 지는 소리가 내 안에서 들린다. 부도밭의 맑고 고요한 분위기에 모든 것을 내려놓을 즈음, 용이 되어 승천하려다 이무기로 변한 상좌의 억울한 전설을 간직한 억산 봉우리의 깨진 바위로 향하는 등산로도 한번쯤 걸고 싶다.

절 뒤 숲에서 마애 아미타삼존불입상을 조성하는 돌 깎는 소리가 천년의 꿈을 안고 몇 번이나 날아오르다 숲으로 떨어져 잠든다. 그의 손길에서 태어날 마애불을 위해 날마다 정성스런 기도로 하루를 열 석공을 생각한다. 아사달의 애절한 전설만큼 불심 가득한 석공에게 간절한 염원 하나 있어, 천년을 밝혔으면 좋겠다.

조낭희 수필가
조낭희 수필가

주지 스님은 출타 중이다. 공양주보살도 절일을 돕는 처사님도 없다. 단출한 살림에 문화재를 관리하는 분 홀로 절을 지킨다. 주지 스님을 뵈러 다음 날 다시 절을 찾았을 때, 대웅전의 눈빛은 여전히 흔들림이 없고, 주지 스님은 번잡한 만남은 피한다는 전갈만 보내 오셨다.

눈 밝은 자 스스로 찾아와서 스스로 기도하고 공부하면 된다는, 문턱 높은 꼿꼿함이 싫지 않다. 하지만 내가 아닌 누군가 젖은 걸음으로 찾아왔을 때, 대웅전이 내게 손을 내밀듯 위무해 주시기를 바라며 천천히 대비사를 빠져 나왔다.

잔잔한 호수 너머, 절은 숲에 가려 보이지 않는데 대비사의 은혜로운 향기가 멀리까지 따라 나와 배웅해 주었다. 호수에서 놀던 뭍별들 어느 새 내 안에서 총총히 뜨기 시작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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