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기업들의 실적은 아직 바닥을 확인하지 못했다. 어쩌면 올 상반기 실적 쇼크를 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반도체 관련 주가는 최근 반등했다. 그 수익률도 시장평균을 훨씬 상회한다. 그 배경을 살펴보자. 단기적으로는 글로벌 기술기업들에 대한 규제 완화 기대를 꼽을 수 있다. 대부분의 기술기업들이 페이스북처럼 가입자 기반의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들은 확실한 차별성보다는 시장을 선점했다는 우위를 바탕으로 영업을 한다. 그 동안은 초기 수요가 급증했기 때문에 핵심경쟁력의 결여가 문제되지 않았지만 지금처럼 가입자 성장세가 둔화될수록 진입장벽이 낮다는 한계, 즉 치열한 경쟁에 노출된다는 약점이 드러난다. 한 사람의 가입자를 얻기 위한 마케팅 비용이 급증하는 것이다. 이를 예방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독과점을 만드는 것이다. 페이스북도 2012년 인스타그램, 또 2014년 와츠앱(WhatsApp)을 인수했다.
기업이 비대해지고 머리가 굵어질수록 정권에 대항할 힘이 생기고, 개인정보를 오남용해서 남이 얻을 수 없는 비밀정보까지 만드는 욕심을 부린다. 따라서 정부는 규제를 하게 되고, 특히 해외 기술기업에 대한 접근을 막게 된다. 그래서 요즘은 인터넷도 지역별로 쪼개진다는 스플린터넷 (splinternet)이라는 말까지 등장했다. 여기에 중국정부가 가장 예민했다. 중국정부는 여론을 감시해야 한다. 또 한편으로는 중국의 방대한 데이터를 국내업체가 선점할 때까지 규제를 통해 시간을 벌고자 했다.
그런데 지금의 저성장을 해결하려면 이런 데이터 흐름(data flow)에 대한 규제를 풀고 전자상거래(e-commerce)를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최근 다보스 포럼에서도 호주, 일본, 싱가폴이 이렇게 주장했다. 2007년 이후 세계적으로 재화의 교역보다 데이터의 교역이 60% 이상 빠르게 증가했다. 특히 부의 불균형이 극심해진 지금 저소득층의 경비 절감을 위해 스마트 솔루션을 통한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려면 규제완화는 필수적이다. 만일 빅데이터의 교류가 활발해져 글로벌 기술기업들이 투자를 재개한다면 서버(server) 중심의 반도체 수요가 증가한다.
한편 장기적으로도 다행스러운 부분이 있다. 반도체 산업에서 가장 위협적인 요인은 중국을 비롯한 후발주자들의 시장진입이다. 예를 들어 D-Ram은 전압을 이용한다. 그런데 저항을 이용한 R-ram이 도입되거나 새로운 소재의 반도체가 탄생하는 등 기술의 패러다임이 바뀔 경우 중국 같은 후발주자가 선발주자를 추격하기 쉬워지는 환경이 조성된다. 그러나 그런 가능성들이 하나 둘씩 사라지며 후발주자들의 시장진입 시기가 뒤로 밀리고 있다.
그 배경을 살펴보면 첫째, 반도체 산업은 고정비 부담이 매우 높은데 지난 몇 년간 사물인터넷 인프라 확충 관련 반도체 수요가 폭발하며 대규모 투자가 가능해졌고, 그 덕분에 생산원가가 급락하여 가격을 충분히 내릴 수 있게 됐다. 그 만큼 대체기술이 진입할 여유를 주지 않게 된 것이다. 둘째, 기존 선발업체들의 기술은 미세화였는데 더 이상 미세화가 어려워 적층을 시도했었다. 낸드(Nand)는 적층이 가능했지만 D-ram은 쉽지 않았는데 최근 HBM(고대역폭 메모리)의 경우 적층 기술이 개발되었다. 여기에 노광장비(EUV)까지 도입되어 기존의 미세화 기술이 더욱 진화하고 있음이 확인됐다.
셋째, 인공지능 관련 고기능 반도체로 갈수록 연구개발 비용이 커진다. 여기서 인텔조차 힘들어 하고, 대만의 UMC와 미국의 글로벌 파운드리는 포기한 상태다. 그만큼 중국이 따라오기 부담스럽다. 첨단 장비도 삼성을 비롯한 선발업체들이 선약을 한 상태라서 중국이 장비를 확보하기도 어렵다. 물론 중국은 언젠가 반도체 시장에 진입할 것임에 틀림없다. 그래도 그 시기가 늦어지며 우리에게는 숨통이 트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