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의 기능이 활성화된 증시에서 기업은 약점을 보이면 공격을 당한다. 공격 주체를 행동주의자(Activist)라고 부르며, 이들은 주로 헤지펀드들이다. 마치 하이에나 같은 존재이며 이들의 야만성 덕분에 기업들은 긴장하게 되고 시장은 효율성을 유지할 수 있다. 한국 증시는 그들의 사냥터가 아니었지만 점차 그렇게 변해갈 조짐이다.
엘리엇이 이번에는 현대차와 모비스의 합병을 요구하고 나섰다. 기아차를 통한 순환출자도 해소할 것을 요구했다. 주주가치 극대화라는 측면은 있지만 그 밖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
지난달 발표된 현대차 그룹의 지배구조 개편안은 주가가 말해주듯 현대글로비스에게 유리한 것이었다. 현대차 그룹이 과거 문제가 됐었던 글로비스를 다시 지배구조에 이용하는 것을 보고 대담하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공정거래위원회는 대주주가 계열사 지분을 사겠다는 부분만 보고 “대주주가 달라졌다”며 놀라워했고 환영했다. 그런 공정위가 더 놀라웠다. 그토록 순진할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공정위는 현대모비스의 국내 사업 수익성을 잘 몰랐던 것 같다. 모비스에서 글로비스로 넘길 사업이 글로비스가 지불한 가격에 비해 알짜였고, 그 결과 글로비스 주가가 오른 것이다.
엘리엇은 현대차 그룹 지배구조 개편에서 글로비스를 중심으로 한 편법을 쓰지 말고 정상적으로 하라고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물론 엘리엇은 현대차나 기아차의 지분을 샀을 것이다. 그것이 행동주의 헤지펀드(Activist hedge fund)의 일이기 때문이다.
한국 정부는 이미 삼성물산 제일모직의 합병을 문제 삼았고, 또 이를 지원했던 국민연금 관계자를 처벌했으니 엘리엇 입장에서는 승리의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물론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몇 번 데였기 때문에 조심은 하겠지만 이제는 사냥기술을 발휘해 볼만한 환경이 되었다.
그런데 한국 투자자는 그 동안 이런 주장을 몰라서 못했을까? 왜 양놈이 갑자기 나타나 돈을 내어 놓으라는 것일까? 과거 고성장기에는 재벌의 순기능이 역기능보다 크니 우리 국민들이 재벌의 지배구조를 존중해 준 것뿐으로 생각된다. 한국의 증시참여자들이 용기가 없어 재벌의 착복을 수수방관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제는 창조경제를 만드는데 있어 재벌이 적합한 조직이 아니다. 그렇다면 한국 정부가 선제적으로 재벌의 조직 및 지배구조 개편을 주도하고, 그 결과 재벌이 보관하고 있던 현금을 일반주주들에게 돌려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정부의 미숙함을 약삭빠르고 무례한 외국인 투자자들이 이용하는 것 같아 기분이 씁쓸하다.
아무튼 우리나라 대기업들의 지배구조 문제가 아직 정리되지 않은 가운데 정부가 정의를 부르짖고 나섰기 때문에 행동주의 헤지펀드들에게는 밥상이 차려진 셈이다. 사실 그들은 지난 수년간 성과가 좋지 못해 펀드규모가 많이 축소된 상태다. 따라서 세계적으로 커다란 기업의 사냥 능력은 잃은 가운데 문제 많고 자그마한 한국 기업들에게 구미가 당길 것이다. 한국에는 배당성향만 올려도 기업가치가 늘어날 늙은 기업들이 많다. 한국에도 기업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행동주의 펀드가 있었다. 그러나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그들이 과거 정권의 핑계를 대지 말았으면 좋겠다. 이제 해외파 행동주의 펀드 덕분에 주주들의 부가 증가할 수 있다. 그러나 국가적으로 비싼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그리고 행동주의 헤지펀드들이 항상 효율성을 높이는 것은 아니다. 특히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말이다.
우선 한국의 재벌 가운데 가치가 있지만 배당성향이 낮고 지배구조에 문제가 있어 주가가 폭락했던 곳들부터 공격의 대상이 될 것이다. 대표적으로 효성, 한국타이어가 생각난다. 행동주의 헤지펀드를 사냥개라고 생각하고 한번 따라가 보는 것도 투자측면에서는 괜찮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