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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권력과 여성

등록일 2018-02-28 20:47 게재일 2018-02-28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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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희정<br /><br />문화부장
▲ 윤희정 문화부장

문화예술계에서 연일 성추행 폭로가 이어지고 있다. 오랫동안 있어온 성추행의 어두운 역사가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문화계에서 권력을 잡고 있는 남성들이 우월한 지위로 여성들을 억압하고 비도덕성으로 성추행 갑질을 한 것이다. 그동안 많은 여성들이 짓밟히고 고통을 감수해야만 했던 이번 성추행 파문 사건은 지금 우리 사회에 엄청난 경종을 울리고 있다. 이 중 한 연출가가 18년 동안 단원들을 돌아가며 상습 성추행 한 사건은 `권력형 성폭력`의 전형이다. `권력`을 쥔 남성이 자신의 권력을 이용해 여성들을 어떻게 착취하는지, 이를 알면서도 묵인하는 `침묵의 카르텔`이 얼마나 공고한지, `관행`이라고 일컬을 정도로 `강간 문화`(강간이 사회에서 용인되거나 정상으로 여겨지는 환경)가 얼마나 만연한지 보여준다. 무엇보다 이 가해자는 한국 연극계에서 `교주`라는 표현이 나올 정도로 연극계를 사실상 지배하다시피한 인물이다.

필자는 이번 사건을 보면서 수컷끼리의 힘겨루기에서 이긴 놈이 암컷을 다 차지하고 시혜 베풀듯 암컷을 나눠주는 동물의 세계가 떠올랐다. 인간사회 문화계에도 그런 동물적 관습이 있는듯하다. 살아보니 인간의 욕망이 참으로 저열하고 그 구현은 더 지저분할 수도 있음을 알게 된다는 시민들의 비난도 여러 곳에서 듣고 있다 .

그렇다면 이번 `문화계 권력자`들이 관행처럼 해왔던 성추행 사건에 있어서 우리가 욕할 수 있는 부분은 폭력과 비도덕성 아닐까. 이번 성추행 피해를 고발한 여성들은 이들 가해자들에 대한 엄정한 처벌을 요구하고 있으며 이에 영향을 받아 새롭게 자각하는 여성들이 늘어나고 있다. 또한 이들의 경험을 드러내는 페미니즘이 새로이 구성되고 있다. 이는 성차별과 가난을 극복해내는 여성해방의식의 발로이자 뿌리깊은 남성우월의식 아래에서의 억압적인 상황에 대한 피끓는 절규일 수 있다.

하지만 이번에 성폭력 피해자와 `미투(me too·나도 당했다)` 운동에 동참하고 있는 여성들이 마치 광신도 무리처럼, 마녀사냥 나선 이들처럼 행동하는 것은 무리가 있어 보인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성폭력은 이 사회 전체에 만연해 있는 남성들 모두 혹은 남성 여성을 떠난 권력을 가진 사람들 모두의 문제이다. 그럼에도 지금 미투는 특정 개인의 문제인 것처럼 조장하고 있다. `이윤택`이나 `고은`만 없으면 성폭력 문제는 사라질 것처럼 특정 개인에 집중하고 있다. 그럴 때 탈선자에게 벌을 줄 수는 있지만 이 문제를 예방할 수는 없다.

그동안 남성중심적이고 가부장적인 사고방식이 만연해 있는 한국사회에서 남성들은 공격적, 경쟁적 특질을 강조 받고 여성들은 수동성과 의존성을 강요받으며 성장해왔다. 더욱이 남성들은 사회 속에서 성 역할 수행에 있어서 주도적이고 지배적이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발달시키며 성장해옴에 따라 성폭력의 범주나 개념에 대한 인식들이 충분히 형성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자라 성인이 돼서는 가부장적인 관습에 기댄 인간내면의 쓸모없는 DNA는 화를 불러내고 누군가를 향해 울부짖으며 악행을 반복적으로 행하게 되는 것이다. 여성을 욕망의 해소 대상으로 삼아온 일부 문화권력자들의 악행도 가부장적 이데올로기의 잔존물이다.

아마 문화권력을 여성이 장악했다면 어땠을까. 이같은 사회문제는 일으키지 않았을 것이다. 남성이 권력을 차지함으로써 여성의 성까지 지배하려 들었던 것은 아닐까. 이번 기회를 틈타 여성들은 문화권력을 장악하려는 운동을 벌여야 할 것이다. 또 우리의 교육이 시험성적 위주로 돼 있고 인성·인품·인격 등 인간됨에는 소홀한 것도 문제다. 국가와 관련 기관이 책임 지고 인성교육을 강화하는 것도 한 방법이라 생각된다. 우리 사회가 묵인하고 용납하던 구태는 뿌리뽑고 `이성의 시대`로 나아가자는 여성들의 외침이 공허한 메아리가 되지 않게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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