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들은 같은 뜻이지만 다르게 말을 하는데 익숙하다. 최근 보수대통합을 통해 자유한국당을 다시 일으켜 세울 심산인 홍준표 대표가 바른정당에 대해 “당대 당 통합을 하자”는 입장을 견지하는 게 비근한 사례다. 홍 대표의 속내야 능히 짐작이 간다. 가는 길이 달라 마주 대하기 불편한 몇몇 의원들은 빼고, 나머지 의원들의 개별입당을 간절히 원한다. 그러나 남의 당 의원들을 어떻게든 영입해 몸피를 불리려는 참이다. 찬밥 더운밥 가릴 수 있나. 일단 `당대 당 통합`을 하자고 주장해야 통합논의를 위해 나선 한국당 의원들에게도 힘이 실린다. 자강파 의원들의 눈치를 보는 바른정당 통합파 의원들도 한결 모양새가 낫다. 이렇듯 정당간 힘겨루기나 헤쳐모여 논의에서는 속셈과 다른 말이 요긴하다. 겉다르고 속다르다고 할 지 모르지만 이 정도는 정치판에서 애교수준이다.
뻔하지만 다른 말을 해야하는 상황은 권력의 심장부라 할 청와대와 대통령에게도 자주 닥친다. 정부 출범이후 비서동 근무, 직원식당 출입, 기업인들과 맥주회동 등 소통과 탈권위주의적 행보로 국민적 지지를 받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이지만 북한 김정은 위원장의 `깽판`을 작심한 듯한 무력도발은 문 대통령을 곤혹스럽게 한다. 베를린연설에서 `신한반도 평화비전`을 제시한 문 대통령은 북한과 `대화를 통한 한반도 평화추구` 의지를 거듭 강조했으나 잇따른 미사일 도발과 핵실험이 터져나오면서 `대화` 운운할 명분 마저 잃고 말았다. 상황이 이러니 문 대통령이 집권초기 구상해 놓은 대북 정책마저 스텝이 꼬이고 말았다. 지난 9월8일, 문 대통령이 북한의 6차 핵실험 직후 사드 잔여발사대 임시배치를 알리며 국민들의 양해를 구했을 때의 일이다. 대통령은 북한이 핵과 미사일을 갈수록 고도화하고 있는 상황속에서 그에 대한 방어능력을 최대한 높여나가지 않을 수 없다는 걸 사드 배치이유로 들었다. 거기까지였으면 좋았을걸 그랬다. 국민들에 대한 약속을 어겼다는 자괴심 때문이었을까. 문 대통령은 “이번 사드 배치는 안보의 엄중함과 시급성을 감안한 임시배치”라며 “사드체계의 최종배치 여부는 여러 번 약속드린 바와 같이 엄격한 일반 환경영향평가 후 결정될 것”이라고 사족을 달았다. 북한의 잇따른 도발에 사드배치가 최선의 조치라고 생각한다고 해놓고, 이번 배치가 임시배치란 군더더기 해명을 덧붙이는 바람에 “이게 무슨 말이냐”고 혀를 찬 국민들이 적지않았다. 이미 배치된 걸 임시배치란 말로 호도한 것은 주민 반발을 누그러뜨리려는 목적이었을까.
또 다른 사례다. 최근 한미양국이 FTA 개정협상을 하기로 했다는 언론보도가 나오자 야당이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요지는 한미FTA협상을 추진한 이명박 정부와 당시 여당에게 `제2의 을사늑약``나라를 팔아먹는 매국노`라고 비난해놓고, 집권한 뒤 미국의 한미FTA 개정요구에 아무소리 못하고 협상에 합의하면서 국익우선을 언급하는 것은 너무 뻔뻔하다는 것이다. “한미FTA를 두고 남이 하면 매국노, 내가 하면 국익우선이라는 이중 잣대를 거두라”는 충고까지 나왔다. 청와대의 해명은 이랬다. “일부 언론이 트럼프 대통령의 `FTA 폐기` 압박에 `백기 들었다`고 보도하고 있지만, 이는 전혀 사실과 다르다. 우리 정부는 한미 FTA 개정협상에 앞서 한미 FTA 효과분석 검토결과를 미측에 충분히 설명했고, 한미 양국은 FTA 개정절차 추진에 합의한 수준에 불과하다.” 즉, 우리 정부는 개정협상 개시를 위한 `통상절차법`상 경제적 타당성 검토, 공청회, 국회보고 등 국내절차를 진행해 나갈 예정이며, 공식 개정협상은 법적 절차 완료 이후 가능함을 명확히 했다는 설명이다. 개정협상 절차를 진행하면 개정협상이 시작된 것이 맞다. 청와대의 해명이 구차하게 들린 것은 나만은 아니었을 듯 하다.
`같은 뜻 다른 말`은 진실과 거짓, 그 사이 어디쯤을 겨냥한다. 앞으로는 언제나 당당한 대통령과 청와대가 보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