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현대차가 중국에서 납품대금 지급에 차질을 빚을 정도로 판매가 감소했다. 사드(THAAD)의 후폭풍에 시달리기 때문이라고 알려져 있다. 그것도 맞는 말이다. 중국은 관공서를 비롯해 민간 자동차 수요에 간섭할 수 있는 나라다. 그런데 그 전부터 현대차는 중국에서 점유율을 잃고 있었다. 놀랍게도 중국 현지업체들의 도전을 받고 있었다. 일본업체들도 당하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자동차는 인간의 경험치가 많이 녹아 있어 쉽게 모방하기 어려운 산업이다. 그래서 우리도 오랜 세월을 통해 기술을 습득했다. 그런데 중국업체들은 어떻게 그토록 빨리 따라온 것일까? 중국정부가 기술을 훔쳤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소나타를 가져다 생산만하지 말고 합작업체에서 신규 동차를 개발하라. 그 과정에서 모르는 부분은 가르쳐 달라”고 주문한다. 무리한 부탁을 뻔뻔하게 한다. “너희들이 자동차를 중국에서 팔기 때문에 우리는 그럴 자격이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최근 르노닛산은 중국에서 동풍이라는 현지업체와 전기차 개발 플랫폼을 공유하겠다고 선언했다. 한마디로 전기차 기술을 넘겨주겠다는 이야기다. 그렇지 않으면 세계 최대의 자동차 시장인 중국에 접근할 방법이 없다.
문제는 현대차의 경우 전기차에 있어 후발주자이므로 합작 파트너를 찾기 어렵다. 즉 앞으로 중국 시장에 점점 접근하기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다음 달 중국에서는 19대 공산당 전당대회가 있고, 내년부터는 시진핑 집권 2차 5개년에 진입한다. 여기서 가장 중요하게 다뤄질 정책은 미세먼지 해소이고, 그래서 전기차 관련 기술이 간절하다. 중국 길리(Geely) 자동차 그룹에 인수된 볼보는 2020년까지 모든 자동차에 전기구동모터를 달겠다는 계획이다.
과거 중국 정부는 정몽구 회장의 과감한 투자에 환영했고, 많은 보답을 했다. 그 당시 그것이 그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중국정부가 필요한 것은 전기차 관련 기술이고, 한국 자동차 업체들은 그것을 갖고 있지 않다. 기술의 후발주자라는 것이 과거 투자위험을 최소화시키며 선진업체를 빠르게 추격하는데 효과적이었지만 지금처럼 패러다임이 바뀌는 시기에는 취약성을 드러낼 수밖에 없다. 중국 정부의 전형적 횡포는 해외업체의 기술을 뺏고, 자국업체들을 양육한 다음 그들이 서로 싸워서 국내 시장이 혼탁해지면 M&A시켜 해외로 나가서 싸우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국제시장에서 중국 깃발이 보이기 시작하면 그 산업이 끝났다고 봐야 한다. 자동차 산업에서 그런 지저분한 모습을 볼 날이 예상보다 당겨질 것 같다.
한편, 최근 트럼프는 한미 FTA 폐지를 언급했다. 사실 FTA가 양국 교역량을 증대시킨 부분은 미미하고 FTA 이후 우리나라의 대미 순수출은 오히려 소폭 줄었다. 그럼에도 트럼프가 목소리를 높이는 배경에는 자동차산업이 있는 것 같다. 저유가로 인해 현대차의 주력 모델인 중소형 세단의 판매가 미국에서 저조하다. 그렇다고 럭셔리 세단 시장에 진입하기는 어렵다. 그 시장 소비자들이 까다로워서 노력대비 성과가 저조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대차는 수요가 좋은 픽업트럭 시장 진입을 준비 중이다. 그런데 픽업트럭의 경우 미국내 수입관세가 25%다. 미국 자동차 업체들만이 즐길 수 있도록 보호해 놓은 것이다. 만일 한미FTA가 유효하다면 이런 관세부담을 피할 수 있을텐데 트럼프는 못봐주겠다는 것이다. 그 동안 한국의 자동차가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던 요인은 한국에서 가장 우수한 젊은이들이 모여 과로로 쓰러질 만큼 열심히 일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더 이상 열심히 한다는 것만으로는 해답을 얻을 수 없다. 이제는 모방의 시대가 아니라 새로운 것을 창조해야 하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조직이 작아져야 한다. 사람이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한다. 이런 과제는 자동차뿐 아니라 한국의 산업 전체가 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