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국적 일본인 수상자`까지 합치면 일본은 25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냈다. 평화상·문학상을 뺀 22번째 의학·과학상 수상자가 이번에 나왔다. 노벨상은 수상자가 결정되기 전에 `후보군`이 다양하게 거론된다. 그만큼 관심이 많이 간다. 그런데 올해는 그 `후보자들`속에 거론되는 한국인 과학·의학자 조차도 없다. 포스텍은 `노벨동산`을 만들어 열의를 불태우지만, 아직 `근접`하는 이름이 안 보인다. 미국에서 연구하는 한국인 학자의 이름이 거명되기는 한다. 한국과 일본의 격차는 왜 이렇게 벌어졌는가.
`기초과학 부실`을 최대 원인으로 꼽는다. 우리의 교육 현실이 노벨상에서 멀어지는 원인이다.“10년도 더 된 교수의 낡은 강의노트”를 앵무새처럼 외워서 시험을 치는 대학교육으로는 창의력을 키울 수 없고, 이런 엉터리 교육을 받은 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인재”로 평가하는 사회가 문제다.
그래서 기업들은 “대학은 불량 제품을 생산하면서 AS도 제대로 해주지 않는다. 기업체가 막대한 비용을 들여 재교육을 해야 써먹을 수 있다”고 불평한다. 우리나라 대학은 `입학`만 중요하고 `졸업`은 거의 자동이다. 명문대학 동창명부에 이름 올리는 것이 목적인 야만교육으로는 노벨상이란 먼 나라 얘기다.
우리나라에는 `의지의 과학·의학자`가 너무 없다. 풍토 자체가 `돈풍토`기 때문이다. 성형외과가 돈 잘 번다 하면 그리로 몰리고, 치과가 재미 본다 하면 치과대학이 상종가를 친다. 오직 연구에 매진하겠다는 뜻 있는 학자가 보이면, 주위 사람들은 걱정을 한다. “세상 물정 너무 모른다”는 것이다. 돈이 최고의 가치가 돼버린 사회에서는 `인류의 복지와 평화에 기여할` 노벨수상자를 낼 수 없다. 이번에 생리의학상을 받은 일본의 오스미 요시노미 도쿄공대 명예교수는 `헤소마가리 정신`을 가진 학자라 한다. 남이야 뭐라 하든 내 갈 길을 간다는 `독불장군기질`이 그를 노벨상 수상자로 이끌었다.
우리나라에도 분명 `뜻 있는 학자들`이 있다. 이들이 평생 `연구자의 길`을 가도록 지원해주는 시스템이 있어야 한다. 민간기업에 의지할 수는 없다. 그들은 `경영`이 목적이다.
따라서 정부가 나설 수밖에 없다. `종신장학금제도`를 만들어서 그가 궁핍하지 않게 연구에 몰두할 수 있게 정부가 지원하라는 것이다.
포스텍 노벨동산에서 반가운 소식이 들려오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