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은 야당출신 정세균 국회의장이 정치적 중립성을 지키지 못했다며 사퇴를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지난 24일 김재수 장관 해임안 처리 과정에서 “세월호든 뭐든 다 갖고 나오라는데 그게 안 돼. 어버이연합 둘 중의 하나 내놓으라는데 안 내놔. 그냥 맨입으로 안 되는 거지”라고 말한 정 의장의 음성파일이 공개됐기 때문이다.
여당소속 의원들은 돌아가면서 국회 로텐더홀에서 1인 피켓시위를 이어가는 중이다. 새누리당 초재선 의원들은 27일 오전 정세균 국회의장의 사퇴를 요구하며 국회의장실에 항의 방문했다. 의원들은 의장실 진입이 불가능하자 구호를 외치며 정 의장을 규탄했다. 이후 새누리당은 의원총회 장소를 의장실 앞으로 변경 개최했다. 이정현 대표는 이 자리에서 “정세균에 의해 파괴되는 의회민주주의를 반드시 복원해야 하고, 국회 의석수만 믿는 야당의 횡포를 반드시 저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당의 강경투쟁을 바라보는 야당은 새누리당이 껄끄러운 현안들을 `물타기`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심의 눈길 일변도다. 미르재단·케이(K)스포츠재단 의혹과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 관련 비리의혹, 이석수 특별감찰관 외압 의혹 등 여야대치 현안들을 몰각시키려는 의도가 있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야 3당은 한목소리로 새누리당의 보이콧과 무관하게 해당 사안들에 대한 진상규명에 속도를 높이겠다고 벼르고 있다.
여야 정치권 어디에도 국민들의 피폐한 삶에 대한 긍휼지심(矜恤之心)은 찾을 수가 없다. 정치권에는 국사(國事)를 놓고 머리를 맞대는 성심 대신에 상대당의 의중을 꿰뚫어 잡으려는 사심만 어지러이 나뒹군다. 민생을 볼모로 잡고, `어디 누가 먼저 죽어나가나 보자`는 식의 러시안룰렛 게임에 흠뻑 빠져있는 꼴이다.
이 시점에 여야가 강대강(强對强)으로 충돌하는 건 내년 대선을 겨냥한 주도권 다툼의 성격이 짙다는 해석이 많다. 가뜩이나 깊어진 `정치무용론`이 걱정이다. 정치부재(政治不在) 사태가 길어질수록 불리해지는 쪽은 정부여당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정중립`의 품위를 의심받고 있는 정세균 국회의장이 사과하고 나서서 출구를 만들어내는 것이 순리다. 억울한 심사가 있더라도 이럴 때 권능을 발휘하라고 뽑은 것이 의장직분 아니던가. 여야 정당들도 모두 한 발짝씩 양보하는 선에서 정치를 정상화해야 한다. 부디 국민들의 눈과 귀를 더 이상 허투루 여기지 말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