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근대시인의 아버지가 민낯으로 만난 산업사회의 허상

윤희정기자
등록일 2015-09-11 02:01 게재일 2015-09-11 13면
스크랩버튼
`파리의 우울`  보들레르 지음·황현산 번역  문학동네 펴냄, 284쪽

“열린 창문을 통해 밖에서 바라보는 사람은 결코 닫힌 창을 바라보는 사람만큼 많은 것을 보지 못한다. 한 자루 촛불로 밝혀진 창보다 더 그윽하고, 더 신비롭고, 더 풍요롭고, 더 컴컴하고, 더 눈부신 것은 없다. 태양 아래서 볼 수 있는 것은 언제나 한 장의 유리창 뒤에서 일어나는 것만큼 흥미롭지 않다. 이 어둡거나 밝은 구멍 속에서, 생명이 살고, 생명이 꿈꾸고, 생명이 고뇌한다”

(보들레르 의 시 `창문들` 일부)

감성과 정서가 메말라 가는 요즈음, 프랑스의 저 위대한 시인 보들레르를 만나면 어떨까?

더우기 독서의 달이라 정해 놓은 9월을 그냥 보내기 아쉽다면, 그의 시집 한 편으로 웅크러진 영혼을 부품하게 살찌워 보는 건 어떨까.

문학평론가이자 불문학자인 황현산(70)씨가 번역한 샤를르 피에르 보들레르(1821~1867) 산문시집 `파리의 우울`(문학동네)이 출간됐다.

`파리의 우울`은 시적 선율이나 박자를 염두에 두지 않은 거친 산문시집이다. 근대화의 폭력성을 혐오하면서도 파리의 몰골을 사랑한 보들레르의 혁명적인 산문시 50편이 실렸다. 시들은 전형적인 시와는 달리 은유보다는 환유와 알레고리가 주로 사용됐다. 기승전결을 갖춘 전통적 이야기의 성격도 없다. 옮긴이 황현산씨는 “산문으로 시를 담아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산문적인 현실에서 시적인 것을 발견해 기술한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비평적 정신의 아이러니로부터 시작해 열광과 도취에 이른 예술가 보들레르는 `파리의 우울`을 여러 차원의 시각을 지닌 예술론으로 승화시켰다. 예술가가 세상에 대처하는 태도, 예술의 주제와 표현에 대한 고민, 그리고 예술의 오랜 이상과 그 현대적 실천에 대한 고뇌를 담았다. 뿐만 아니라 예술의 사회적 타락이 뿌리내리는 과정을 고발하고 예술의 악마성을 성찰·기록했다.

근대시인의 아버지라 추앙받고 있는 보들레르의 시는 도시의 현대화가 우리 인간들에게 과연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지를 과장이나 미화 없이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를 소위 현대시의 시조라 일컫는 충분한 근거가 바로 여기에 있다. 보들레르는 누구보다 산업사회의 허상을 꿰뚫고 있었고 1848년 2월혁명에 직접 참여했던 사회적 인물이었다. 그런만큼 그는 현대도시가 안고 있는 서글프면서도 종종 비극적인 핵심을 폭로했던 것이다. 나폴레옹 3세의 제2제정하에 있는 수도 파리의 저속한 시민 생활 속에서 그는 대표 시집 `파리의 우울`을 통해 날카로운 현실인식과 내적갈등을 고스란히 담았다. 19세기 프랑스, 파리의 변모하는 도시구조와 새로운 피지배 계급인 산업 프롤레타리아가 형성되는 사회속에서 그는 과학과 진보가 초래할 인류의 암울한 미래를 벌써 지적하고 있었던 것이다. 보들레르와 파리는 자기만의 낙원을 찾아헤매고, 그들의 꿈, 불행, 사랑, 고통을 아주 진솔하게 이야기하는 감수성 예민한 영혼의 그것이다. 그의 시에 나타나고 있는 이런 고통과 방탕함, 꿈꾸지만 좌절하고 혹독하게 일하지만 허무한 일상이라는 도시적 틀은 정신성 부재로 말미암은 빈사상태에 빠진 현대도시 문명에 대한 보들레르의 태도를 반영하고 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상념을 방해하는 환경 중 현대 생활로 인해서 점점 커져가는 주의 산만과 물질적 진보의 소란을 경계하고 불평했다.

“열린 창문을 통해 밖에서 바라보는 사람은 결코 닫힌 창을 바라보는 사람만큼 많은 것을 보지 못한다. 한 자루 촛불로 밝혀진 창보다 더 그윽하고, 더 신비롭고, 더 풍요롭고, 더 컴컴하고, 더 눈부신 것은 없다. 태양 아래서 볼 수 있는 것은 언제나 한 장의 유리창 뒤에서 일어나는 것만큼 흥미롭지 않다. 이 어둡거나 밝은 구멍 속에서, 생명이 살고, 생명이 꿈꾸고, 생명이 고뇌한다”(보들레르의 시 `창문들` 일부)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 파스칼 피아의 `아뽈리네르` 등을 한국어로 옮긴 황 평론가는 직역을 고집하는 번역가다. `파리의 우울`에서도 최대한 원문에 충실하고 직역을 고집했다.

황씨는 “직역을 잘하면 우리말로도 매우 자연스럽고 훌륭한 문장을 얻을 수 있다는 게 제 신념”이라며 “보들레르의 문장은 한국인에게도 쉽고 자연스럽게 읽힐 것”이라고 설명했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문화 기사리스트

더보기
스크랩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