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중 기
아직도 우리를 지키고 있음을 알았네
그때, 우리가 버렸던 낫과 호미가
해 거르지 않고 잡풀들 다스려 온 것도 알겠네
알겠네, 무엇이 우리 집안을 다스리게 하는지
풀씨 흩날리는 무덤곁에서
이제 다시금 알겠네
죽어서도 조상들은 후손을 버리지 못하고
살아갈수록 후손들은 조상을 잊지 못하네
모든 길은 무덤으로 이어져 있고
무덤에서 내려가는 길로 서울까지도 갈 수 있겠네
그 무덤 앞에서 꼿꼿한 동방의 흰수염을 보았네
지극히 아름다운 눈물 몇 방울 콧등 찡하게 했었네
목숨과 농사 지을 땅을 물려주시고 가신 아버지의 무덤이 있는 선산에서 시인은 질기게 이어져오는 어떤 운명적 끈을 발견한다. 푸른 잔디 무덤 속의 조상은 푸른 눈으로 후손들을 지켜보고 있고 자손들을 그 봉분 아래서 한 세대 몫의 생을 영위하고 있는 것이어서 단절이 아니라 질기게 이어지는 운명의 틀을 시인은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이게 우리네 한 생이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