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유럽문화 보는 새로운 감식안 제시

윤희정기자
등록일 2015-08-21 02:01 게재일 2015-08-21 13면
스크랩버튼
`유럽문화탐사` 권석하 지음 안나푸르나 펴냄, 336쪽

재영(在英) 저널리스트 권석하씨의 `유럽 문화 탐사`(안나푸르나)는 평범한 여행서처럼 느껴질 수도 있지만, 읽어보면 유럽 문화를 보는 새로운 감식안을 제시하는 책이다. 유럽 문화를 만들었던 인물과 유적을 탐사하는 촘촘한 여정은 우리가 여행을 통해 느끼는 잔잔한 휴식과는 거리가 멀다. 자신이 좋아했던 새로운 문화를 바라보는 시선은 치열할 뿐 아니라 절실하게 새겨지는 상념이다. 저자의 발걸음을 쫓아가다보면 희로애락을 공감하는 저자의 깊고 넓은 문화에 대한 강한 탐구욕에 놀란다. 평범한 관광지에 던진 담백한 의문들은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기에 충분하다.

◇유년기의 추억과 조우하다

어린 시절 동경했던 거장의 유적지를 성장한 후에 볼 수 있다는 것은 벅찬 일이다. 아마도 모두에게 그런 기회가 생기는 것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책을 읽던 아이에서 여러 번 인생의 질곡을 돌았던 저자에게 현장의 감상이란 청년기의 기분과 같지는 않을 것이다. 저자의 복잡 미묘한 생각들은 그래서 페이지를 넘나들며 자유롭게 등장한다. 노르망디의 몽셍미셀에서 빅토르 위고와 골똘히 생각에 잠기다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무덤이 있는 루아르 계곡을 따라간다. 루앙에서 프랑스의 영웅인 잔 다르크를 기리고, 루앙 대성당에서는 모네의 이야기를 꺼낸다. 만약 천재 화가 고흐의 곤궁한 삶이 사실인지 의심한다면 시대를 잘못 태어난 불운한 인생에 대한 연민 때문일 것이다. 생전 고흐가 그리워했을 따뜻한 식사와 현재 상상을 초월한 그림 가격은 알 수 없는 세상의 이치를 깨닫게 한다. 이따금 시간을 잊은 대문호와 예술가가 하나가 되고, 자연과 예술, 건축과 시공간이 만나는 장면들이 책 장 사이사이 알알이 박혀있다.

◇역사 담은 도시, 영웅의 슬픔이 잠긴다

4세기 중반 백년 전쟁의 막바지에 프랑스를 구한 것은 하급관리의 딸 잔 다르크였다. 오를레앙의 위기에서 홀연히 나타난 잔 다르크는 샤를 7세에게는 구세주였다. 이 불세출의 영웅은 그러나 자신이 목숨을 바쳐 싸운 사람들로부터 차례차례 배신을 당한다. 노르망디의 주도 루앙은 그런 잔 다르크의 도시다. 저자는 이 도시에 대해 다음 세 마디로 요약한다.

`너무 무자비하거나, 잔인하거나, 혹은 무식하거나`.

그 이상의 말이 필요 없는 저자는 잔 다르크의 아픈 삶을 반추하면서 마르셀 광장의 잔 다르크 성당을 돌아본다. 지극히 절제된 감성으로 독자들의 공감을 끌어낸다.

▲ 고흐 무덤가는 길 언덕에 있는 오베르 수아즈 성당.
▲ 고흐 무덤가는 길 언덕에 있는 오베르 수아즈 성당.

◇종횡 무진한 상상력, 생각의 깊이 더해

스페인의 대표적 건축가 가우디는 자연에는 직선이 없다는 이유로 건축물을 곡선으로 만들었다. 가우디의 건축물을 살피면서 저자는 네덜란드의 추상화가 몬드리안의 작품을 떠올렸다. 그는 자연을 극히 싫어해 곡선과 초록색은 쓰지 않았다. 경험에 더한 사유가 만들어낸 미학은 이처럼 다른 원칙을 만든다. 저자의 상상력은 `이 둘이 만난다면 어땠을까?`라는 의문으로 마감하면서 여운을 남긴다. 각각 다른 장에서 등장하지만 `거짓말, 아름다운 그러나 진실이 아닌 것이 진정한 예술의 목적이다`라는 오스카 와일드의 문장에서 피카소의 그림이 연상되는 것은 작지만 즐거운 혜택이다.

그뿐만 아니라 버지니아 울프의 유서의`추행과 폭력이 없는 세상, 성차별이 없는 세상에 대한 꿈을 간직한 채 강물을 바라보고 있다` 등은 전체가 완전한 창작임을 밝힌다. 사물을 보고 그 사물과 대척점에 있는 것, 혹은 그 사물을 해석할 수 있는 다른 무엇을 생각해 연결하고, 진실로 널리 알려졌으나 그 사실을 의심해 사유의 외연을 확장하는 저자의 별난 상상력이다.

◇호기심 멎게 하는 그리운 고국의 향수

고향을 떠난 저자의 세상에 대한 과도한 호기심도 태어나고 자란 고국의 향수 앞에서는 잠시 멈춘다. `한국관`이 있는 케임브리지 피츠윌리엄 박물관에 우리 도자기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세계 최고인 고려청자의 자태에 자부심을 느끼며 곰버츠 씨가 평생 수집한 130점의 작품에 대한 감사와 제아무리 진귀한 문화재도 국민의 애정과 관심이 없으면 가치가 없다`고. 먼 곳으로 시집보낸 딸처럼 수만리 타향에서 외롭고 수줍게 고고한 자태를 뽐내는 우리의 도자기를 케임브리지에 방문하는 길이라면 꼭 한번 들러 `위로와 격려`를 하라고 잔잔히 권한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문화 기사리스트

더보기
스크랩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