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다운 한국인의 얼굴
연미사(燕尾寺) 법당에 앉아 있는데 자꾸만 마애석불이 아른거린다. 조심스럽게 달려간 내게 불자 한 분이 온기가 남아 있는 좌복을 건네주고 총총히 사라진다. 거대한 바위불상 아래 두 손을 모으고 서 보지만, 석불의 표정은 읽을 길이 없다. 바위에 둘러싸인 작은 공간은 어머니의 자궁처럼 아늑하다. 어떤 근심도 들어서지 못할 태곳적 신성함이 전해진다. 적당히 흐린 하늘과 숨을 죽이는 바람, 깊은 강물과도 같은 침묵이 나를 에워싼다. 조용히 가부좌를 하고 앉는다.
대웅전에서 들려오는 예불 소리가 물꼬가 되어 영혼으로 흘러든다. 마음은 제 멋대로 과거를 향해 치닫다가 내면을 더듬기도 한다. 이 은밀한 공간은 내가 우주와 연결되어 있는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 해 줄지 모른다. 섣부른 욕심이다. 딱딱하게 굳어 있는 의식이 바꾸어지지 않는 한 나는 결코 우주와 하나가 될 수 없다. 기도를 하고 나면 마음과 뇌가 훨씬 더 말랑말랑해져 있는 것만으로 위안한다.
이천동 마애여래입상은 보물 115호로 제비원 석불로 불린다. 전체 높이가 12.38m, 너비 7.2m의 거대한 자연 암석이 몸체이고, 머리는 다른 바위를 조각하여 올려놓은 특이한 불상이다. 전설에는 법당과 석불을 도선 국사가 만들었으며, 선덕여왕 3년(634년)에 비를 맞지 않도록 6칸의 전각을 세워 실내불처럼 만들었다는 기록이「영가지」에 전한다. 하지만 불상의 형태로 보아 고려시대에 만들어졌다는 설도 있다.
바위 사이에 뿌리를 내리고 서 있는 몇 그루의 소나무들, 그 홀씨가 대들보가 되고 한 집안을 지키는 가신(家神)으로 남아 `성주풀이`의 본원지로도 유명하다. 민초들의 애환을 보듬고 살아온 마애불은 무속신앙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어 더 친근하다. 얼굴 곱고 마음씨 착한 연(燕)이의 불심과 지붕에서 떨어져 제비가 되어 날아간 어느 와공의 전설, 나는 천 년의 세월을 가로질러 그들과 마주하고 싶다.
한참을 상념에 젖어 헤매는 사이, 저만치 홀로 걷고 있는 친구가 보인다. 일상의 긴장을 내려놓고 빈 마음으로 서고 싶다는 친구와 또 다른 의식의 세계로 확장을 꿈꾸는 나 사이의 연결고리는 무엇일까? 텔레파시 같은 교감 따위는 없어도 우리는 무언가로 얽혀 이곳에 왔다. 개별적 존재로 섬처럼 살아가는 우리를 하나로 투합시키는 인연의 근원이 궁금하다.
나는 좀 더 마애석불을 감상하기 위해 너른 공원으로 향한다.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하는 사람과 무심히 달리는 자동차들의 풍경이 잠시 낯설다. 공원은 한적하다. 마애불이 정면으로 올려다 보이는 벤치에 앉아 장엄한 오케스트라의 교향곡을 감상하듯 옷매무새를 갖춘다. 그리고 상서로운 기운이 감도는 마애석불과 마주한다.
서방을 바라보고 서 있는 마애불은 온화하면서도 기품이 넘친다. 반듯한 자태는 세련된 예술미와 위엄성을 갖추고 있으며, 고려시대 석불에서 볼 수 있는 투박함도 없다. 뚜렷한 이목구비 사이로 보일 듯 말 듯 미소가 번진다. 등이 켜지듯 마음이 밝아온다. 언젠가 두근대는 심장을 갖고 태어날 것만 같은 마애불이다. 피그말리온 못지않은 정성과 사랑을 받았을 긴 시간을 떠올린다면 불가능할 것도 없지 않은가.
가끔 사고의 사각지대에 갇히면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 초라한 영혼과 홀로임에 몸부림쳐 보지만 부질없는 짓이다. 그럴 때 마애불의 미소와 마주한다면 상실감은 채워지고 세상과 소통할 수 있을 것만 같다. 어떤 메시지가 들릴 것만 같아 가만히 마음을 열고 귀를 기울인다.
“성 안 내는 그 얼굴이 참다운 공양구요(面上無瞋供養具)/ 부드러운 말 한마디 미묘한 향이로다(口裏無瞋吐妙香)/ 깨끗해 티가 없는 진실한 그 마음이(心裏無瞋是珍寶)/ 언제나 한결같은 부처님 마음일세(無染無垢是眞常)”
문수보살 게송이 떠오른다. 편안한 미소가 무의식적으로 내 안에 각인되어 있었던 것일까? 참다운 도는 그리 거창하지 않다. 때때로 나는 자신을 독립된 실체로만 여겨 감정에 매몰되는 경우가 많다. 마음과 생각을 거짓 없이 전달하는 충실한 메신저인 얼굴, 그는 자주 통제력을 잃고 내 감정을 즉각적으로 토해내 스스로를 당황케 한다. 미소 짓는 얼굴만큼 나와 이웃을 행복하게 하는 선업이 있을까?
마애불의 미소에서 은은한 풀피리 소리가 흘러나올 것만 같다. 지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우리가 만들어 가야할 한국인의 얼굴이다. 착한 마음으로 복을 쌓은 연이 처녀의 혼을 그대로 담고 있는 마애석불은 석공의 노련한 손재주가 아니라 불심과 예술혼이 빚어낸 참 얼굴이다. 그가 하나의 돌덩이로 존재하며 제비원을 지킨다고 여긴다면 그것은 의식이 만들어낸 환영일 수도 있다.
가지런히 두 손을 모으고 마애불을 올려다본다. 우울했던 마음에 등이 켜지고 웅얼거리던 불안의 파편들이 사라진다. 지금 이 순간 곁에 있는 사람에게 마음을 표하고 싶다. 친구를 향해 손을 흔들자 먼저 알고 미소로 화답한다. 커다란 등이 활짝 켜진다. 성불의 기회는 순간순간 내 가까이에 있다고 마애불이 속삭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