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탑승한 몽골행 비행기는 오후 2시 20분 인천국제공항을 출발하여 3시간여를 날아 울란바타르국제공항에 도착하니 오후 6시 10분이었다. 6월 초인데도 초원은 겨우 새싹이 나고 있었다.
울란바타르는`울란 카타르`라고 불릴 정도로 중동의 산유국인 카타르 만큼 발전의 기대가 큰 나라였다. 경제가 빠르게 성장하고 국민소득도 4천불에서 몇 년 사이 6천~7천불로 오를 것으로 예상되었었다.
그러나 몽골경제는 몇 년 사이 지속적으로 악화되고 있었고 앞으로의 전망도 불투명해졌다. 몽골의 주 수입원이던 지하자원의 국제가격이 하락하고, 외국인투자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주요 지하지원 투자자들이 몽골을 떠남으로 인해 관련 분야들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1~2년 사이 몽골 화폐인 투그릭은 평가절하가 심해져서 한화 1천원에 1천250투그릭 이었던 것이 1천850투그릭으로 늘어났다. 몇 년전 부터 대규모로 지어지던 중산층 아파트들이 지금도 지어지고 있지만, 수요자를 찾지 못해 걱정하고 있다.
요즈음 몽골정부의 외국자본에 대한 태도가 많이 바뀌었다고 한다. 해외투자유치의 중요성을 강조했었지만, 실제적으로는 이를 위한 법적·제도적 여건들이 제대로 준비되지 않았었다. 그러나 이들이 지난 수년간 큰 어려움을 겪으며 외국자본의 중요함을 깨닫고 있다고 한다.
네팔이 강진으로 인해 크게 파괴되고 어떠한 방식으로 재건해야 할지 당황해 하는 상황이나, 자원 없고 기술도 없어 쩔쩔매는 아프리카 제국들에 비하면 사실 몽골은 크게 비관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몽골에는 넓은 국토에 풍부한 지하자원이 있고, 전통적인 농축산업을 어느 정도 향상만 시켜도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라고 보아진다.
이튿날은 우리 한동대와 국제심포지엄을 공동주최하는 미국 미주리대 트루만행정대학원 교수들과 울란바타르 도심 이곳저곳을 돌아보았다. 우선 자이승전망대로 갔는데, 갑자기 빗방울이 떨어지고 기온이 내려갔다.
자이승전망대는 몽골의 독립기념탑이며, 주변은 공원지역이라고 할 수 있는데, 지난 7~8년 사이에 고층건물들이 가득 들어섰다. 뒤편 산기슭으로도 고급아파트들이 들어서고 있다. 이러한 고가의 아파트들이 집단으로 지어지는 반면에, 도시의 대부분은 무허가 천막촌이나 판자촌인 게르지역이 차지하고 있다. 울란바타르는 빈부의 차가 심하고 전체주거의 60%가 이러한 게르주거이다.
칭기스칸광장으로 갔다. 이곳은 칭기스칸 좌상과 국회의사당이 있는 상징적인 광장으로 도심중앙에 위치하고 있다. 쌀쌀한 날씨에도 어린이들이 집단으로 무용을 하고 있다. 내일이 어린이 날이라서 마스게임을 준비 중이라고 한다. 한쪽에는 많은 사람들이 바닥에 앉은 자세로 운집해 있는데, 간단사원에서 승려들이 나와 포교 중이었다. 광장 옆의 음악당에서는 몽골국립교향악단의`차이콥스키`공연이 열리고 있었다.
필자의 숙소는 이곳에서는 괜찮은 호텔 중 하나인데, 겨울과는 달리 지금은 투숙객이 많은 편이다. 대부분 등산복을 입은 중년 이상 연령대의 한국인들이 주를 이루는 것 같다. 아침식사시간에 보면 등산복 차림으로 우르르 몰려와서 웃고 떠들면 즐겁게 식사들을 하고 있다. 일상에서 벗어나 이렇게 넓은 초원 있는 몽골에 왔으니 얼마나 자유스러우랴 싶다.
한 노년의 영국인부부를 만났다. 이들은 은퇴여행 중인데, 영국에서 떠나 프랑스에서 기차를 타고 시베리아까지 와서 바이칼호수에 며칠 머물다가 몽골로 왔다고 한다. 몽골 방문객들 중에 이렇게 기차여행을 하는 분들이 꽤 있다. 이들은 대개 극동의 블라디보스톡까지 까지 갔다가 TSR로 되돌아간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