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염되지 않은 것이 가장 아름답다
봉화 분천역은 첩첩산중에 있는 작은 간이역이다. 열차가 유일한 교통수단이었을 것만 같은 깡촌이다. 엽서 속에나 숨어 있을 듯한 풍경들이 협곡열차가 생기면서 알려지게 되었다. 이 오지에 봄과 관광객이 찾아와 들썩인다. 열차는 백두대간을 뚫고 내려오는 낙동강 지류를 끼고 느리게느리게 달린다. 보이는 것은 봄볕에 설레는 산과 계곡뿐이다.
열차는 묘한 향수를 싣고 나아간다. 어린 시절, 여행을 좋아하시는 할아버지를 따라 나설 때면, 엄마는 잊지 않고 간식거리를 준비해 주셨다. 껍질이 잘 벗겨지지 않는 달걀을 까먹을 때쯤이면 열차는 낙동강 철교 위를 철커덕철커덕 심장이 얼어붙는 소리를 내며 건너갔다. 빨려들 것만 같던 도도한 물살과 철교 위를 지날 때면 어김없이 들리던 거칠고 난폭한 문명의 소리가 그리워지곤 한다.
10여 년 전, 페루의 마추피추를 향하던 협곡열차도 그랬다. 끝까지 계곡의 손을 놓지 않고 협곡을 달리던 열차는 비슷한 풍경을 하염없이 몰고 왔지만 결코 지루하지 않았다. 개발되지 않은 그들의 삶 속에는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고독과 정신의 공허함으로 몸부림치지 않는, 때 묻지 않은 그들의 영혼이 부러웠다. 그 즈음 몹시도 바쁘고 지쳐 있던 나는 먼 남미의 협곡열차에 힘든 것들을 내려놓고 돌아왔다.
옛 기억을 더듬고 있는 사이, 열차는 승부역에 우리를 토해내고 무심하게 사라졌다. 벽처럼 막혀 있는 산의 발목을 적시며 강물은 유유히 아래로 흐른다. 기세등등한 뙤약볕이 모든 것을 위협해도 물은 거침이 없다. 자갈밭에 구르고 햇살에 데워지면서 바다로 흘러가는 법을 스스로 배운다. 우리는 그 물길을 따라 묵묵히 걷는다.
`흐르는 강물처럼`이라는 오래된 영화가 떠오른다. 은빛으로 반짝이는 계곡에서 송어를 잡기 위해 긴 낚싯대를 던지던 부자(父子)의 모습이 정겹고 아름답던, 잔잔한 영화였다. 흡사 이런 배경이었다. 영화 `박하사탕`의 야유회가 벌어지던 계곡이나 철교 위에서 열연을 한 주인공의 절규가 기차소리에 묻어 들려 올 것만 같다.
길은 잊고 있었던 기억들을 아련히 건져 올리고, 인적 없는 산중에는 봄이 홀로 절정이다. 도화의 수줍음과 하얗게 터진 조팝꽃의 속살, 맑고 청순한 돌배나무꽃이 한창이다. 키 작은 제비꽃과 양지꽃도 모처럼의 소란스러움에 잠을 깨고 쳐다본다. 산은 모든 것을 가두고 물길과 철길, 세 평의 하늘만 터주고 눈부시게 청정하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작은 역, 양원역에는 하나뿐인 주막이 있지만 기차가 설 때마다 낭만보다는 밀려드는 관광객과 상업성이 혼재한다. 경치가 좋은 곳이면 어디든 북새통을 이루는 좁은 국토가 안쓰럽다. 그 몸부림이 산골까지 밀려들었다. 머지않아 이 길도 세련된 도시 냄새를 풍기며 우리를 맞지나 않을까 두렵다.
양원역에서 강물과 이별하고 다리를 건너 울진으로 접어든다. 때마침 강물을 따라 달리는 분홍빛 협곡열차를 향해 일제히 손을 흔든다. 열차 속에서도 팔랑팔랑 응답해오는 수많은 손들이 꽃처럼 아름답다. 가슴 따뜻한 향수가 살아 있는 곳, 비탈진 밭과 오래된 양철지붕들이 변화에 맞서며 버티고 있는, 눈물이 날 것 같은 정겨운 풍경들이다. 쭉쭉 뻗은 낙엽송들이 연둣빛 새순을 두르고 레이스 빛 그늘을 짜고 있다. 수채화 길이 끝나는 곳에 구암사가 보인다.
소박하고 조용한 사찰이다. 가정집처럼 쪽마루를 앞에 두르고 나그네를 편하게 맞는다. 역사가 길어 보이지 않지만 스님들이 수행하는 선원으로 대한 불교 조계선종 총본산이다. 대웅전에는 석가모니 부처님이 봉안되어 있고 스님이 계신 방에도 아미타 부처님이 모셔져 있다. 지암 스님과 짧은 시간 대화를 나누며 청정한 숲 기운을 느낀다.
누구나 한번 들어가면 다시는 나오지 못한다는 저승골과 거북 바위가 물속에서 헤엄을 치고 있는 용소를 소개해 주신다. 치마처럼 펼쳐진 바위가 온통 계곡을 덮고 그 사이로 물길 깊은 용소가 세 개 있다. 물살은 쉼 없이 중심을 향해 돌며 길을 잃고 있다. 내일이 불확실하다 해도 지금 이 순간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본다. 그저 흘러가는 생이 어디 있으랴. 가끔은 곤두박질을 치고, 길을 잃기도 하면서 바다로 흘러가는 법을 터득한다.
대웅전이 올려다 보이는 소나무 숲 아래에서 쉬기로 했다. 배낭을 베고 단잠에 빠지거나 대화를 나누는 사람, 지친 기색 속에서도 모두 얼굴빛이 맑다. 절에서 떠온 약수로 목을 축이는 동안 과일과 간식거리들이 쏟아져 나온다. 잔디밭 위에서 펼쳐지는 즉석 만찬이다. 솔바람이 땀을 식혀 주는 나른한 오후의 여유로움을 안고 이야기에 빠진다.
마네의 `풀밭 위의 식사`를 화제로 삼았다. 문명의 편견이 낳은 겉치레의 옷이 주는 허위를 고발한 선구적인 화가를 예찬하며 우리는 간식과 대화, 마음을 나눈다. 소통이 몰고 오는 존재의 울림들로 꽉 찬 하루, 구암사 가는 길은 오염되지 않은 순수함이 남아 있다. 걷다보면 몸과 마음이 백지상태가 되고, 산골의 봄과 공기가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깨닫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