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드 중국사 송…` 디터 쿤 지음, 육정임 옮김 너머북스 펴냄, 568쪽
송을 쇠퇴하게 했다는 문치주의의 이념적 토대는 물론 유교다. 알려졌다시피 송대는 주희(朱熹)를 위시한 유학자들이 발흥시킨 신유학(성리학)이 이후 중국 사회의 모든 영역을 지배하게 한 시발점이었다. 후대 개혁가들로부터 `복고` `보수` `반동` 등 온갖 혹평을 받은 중국적 사고체계가 바로 송대에 정립된 셈이다.
송대 신유학에 대해 그처럼 많은 비판이 쏟아졌다는 점을 고려하면 디터 쿤 독일 비르츠부르크대 교수의 `하버드 중국사 송 - 유교 원칙의 시대`는 매우 색다른 시각을 보여주는 저작이다. 이 책에서 그는 송 왕조가 당시 세계에서 가장 진보한 문명으로 자리잡았다며 그 원동력으로 주저 없이 유교를 지목한다.
물질문명사가인 저자가 각종 사료를 통해 보여주는 송 왕조의 면모는 유럽의 르네상스를 능가하고도 남을 수준이다. 몽골 침입으로 인구가 감소한 13세기에도 세계 인구의 절반가량이 중국에 살았고, 발달한 농업기술과 토지제도 덕분에 농업 산출량이 증가해 당시 세계에서 가장 높은 1인당 소득을 기록했다고 한다.
게다가 다양한 형태의 방추차, 생사 감는 기계, 견·마 수력방적기 등 각종 직물 생산장비들이 등장해 유럽의 산업혁명을 방불케 할 만한 경제적 발전을 이뤘다. 이를 토대로 새로운 시장과 상업조합이 생겨났고, 화폐경제, 교통수단, 도자기 생산, 광업, 제지, 인쇄, 출판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동시대 유럽을 앞섰다.
저자는 왜 유교가 송대의 이같은 번영을 가능케 했다고 봤을까. 그는 먼저 당 말기에서 송 초기로 이행하는 시기 매우 뚜렷한 단절이 발견된다는 데 주목한다. 세습귀족이 몰락하고 새롭게 등장한 송대의 사대부 계층은 유교 이념의 교육을 받고 치열한 과거시험을 거쳐 등용되면서 중국의 전통을 다시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들이 추구한 유교 원칙은 무(武)가 아닌 문(文)의 원리였으며, 상류층의 공적·사적 생활을 모두 규제하는 이념이었다. 당대 엘리트 계층이던 사대부는 각종 특권과 혜택, 정치적 영향력, 가문의 명망 등을 누렸지만 더불어 자신의 욕망을 절제하고 관리로서 책무와 왕조의 이익을 중시하는 이타적 윤리의 소유자여야 했다.
이런 문인 관료층이 떠받친 송의 문치 질서는 다른 어느 왕조보다 유교의 이상적 통치에 근접한 황제들, 실용주의적 분위기에서 행정·경제적 효율성을 이룬 정부, 절제와 사회적 책임의식을 지닌 사대부 계층, 경제 분야의 발전과 사회적 역동성 등 모든 분야에서 두드러지게 앞선 모습을 보였다고 저자는 평가한다.
그렇다면 `무능`이라는 비판을 받는 송의 국제관계도 달리 판단해야 할 것이다. 저자는 북방민족 왕조와 무려 4차례나 조약을 맺으며 고개를 숙인 송의 외교가 장기간 평화와 번영을 가능케 한 실용적 외교전략이었고, 유교는 그와 같은 `평화적 공존` 전략을 추동한 이념적 토대였다는 새로운 평가를 내놓는다.
/정철화기자 chhjeong@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