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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역사는 '지식인 公認'… 암투

정철화기자
등록일 2015-02-13 02:01 게재일 2015-02-13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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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지식계보학`  최연식 지음  옥당 펴냄, 336쪽

한국사의 다양한 인물과 분야를 중점적으로 탐구해온 최연식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가 `조선의 지식 계보학`<옥당, 336쪽, 1만6천원>을 펴냈다.

최 교수는 최근 중국 북경대와 일본 게이오대 방문교수 경험을 바탕으로 중국과 일본의 역사 속에서 살핀 권력의 메커니즘에 관심을 두고 한·중·일 삼국의 개국과 근대화 과정을 비교하는 연구를 기획하고 있다.

`조선의 지식계보학`은 그의 이런 관심사를 대중적으로 드러낸 첫 번째 책이다. 이 책은 조선의 역사를 지식인의 국가공인 과정에서 드러난 권력 암투의 역사로 보고, 힘의 논리에 따라 역사를 조망했다. 조선의 지식인 15명이 문묘에 종사되는 과정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고 그 일이 조선의 역사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상세하게 살피고 있다.

그는 조선시대의 지식인의 기준으로 `문묘 종사`에 근거했다. 문묘종사는 유교의 성인인 공자의 사당인 문묘에 유학과 주자학에 위대한 공헌을 한 현인들을 모셔놓는 것으로 조선의 지식인을 대외적으로 공인하는 과정이다.

저자는 조선에는 수준 높은 학문과 비판정신을 겸비한 지식인들이 많았지만, 문묘에 종사된 이는 정몽주를 포함해 15명뿐이라고 설명했다.

이를 토대로 정몽주와 정도전에 주목했다. 조선 건국의 일등 공신이자 `민본주의`라는 그만의 성리학적 이상세계를 그렸던 삼봉 정도전은 목록에 포함되어 있지 않다.

반면 `단심가`라는 유명한 시를 남기며 조선개국에 반대했던 고려의 충신 정몽주는 조선의 지식인을 대표하는 문묘종사 목록에 포함되어 있다. 조선을 위해 일했던 정도전은 조선의 지식인으로 보지 않고 단 한 번도 조선에 충성하지 않았던 정몽주는 조선의 지식인이 될 수 있는 것일까. 과연 이 문묘종사는 어떤 기준으로 시행된 것인가.

저자는 `조선의 문묘 종사에서 중요한 것은 “대상자 선정의 표면적 결과가 아니라 대상자 선정 과정에서 드러난 권력정치의 적나라한 속살”이라 말하며 개별 인물 연구가 아닌 `문묘 종사의 정치 동학`에 초점을 맞춰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 정몽주 초상화

정몽주는 조선 건국 후 100여년이 지난 중종 12년(1517)에 문묘 종사가 결정됐다.

조선 건국에 반대했던 정몽주가 조선 시대 첫 문묘 종사자가 된 데는 정치적인 배경이 깔려있다. 연산군 폭정 이후 왕위에 오른 중종은 반정(反正)의 시대정신을 제시해야 했다. 이 역할을 맡은 조광조 등은 자신들의 스승인 김굉필을 문묘에 종사하고 싶었지만 여의치 않았다.

이에 조광조 세력은 김굉필의 정신적 기원이자 시대정신의 상징으로 부당한 권력에 맞서다 희생된 지식인의 절의정신을 대표하는 인물로 정몽주를 내세웠고 결국 고려에 충성을 바친 정몽주가 조선 지식계보의 기원이 될 수 있었다.

저자는 조선의 대표적인 지식인이었던 정도전이 문묘에 종사되지 못한 이유를 비롯해 이황, 이이, 김굉필, 조광조 등이 어떻게 문묘에 종사될 수 있었는지를 살피며 조선 성리학의 계보가 권력과 지식인 사이의 정치 투쟁의 산물이었음을 이야기한다.

/정철화기자 chhjeong@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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