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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선하는 마음으로

조낭희 수필가
등록일 2015-02-13 02:01 게재일 2015-02-13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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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골굴사
▲ 경주 골굴사
▲ 경주 골굴사

함월산 기슭에 자리한 골굴사는 신라인의 호국불교 정신과 불가의 전통 수행법인 선무도(禪武道)를 양성시키는 중요한 사찰이다. 초입부터 여느 산사와는 분위기가 다르다. 일주문 앞에 무예 조각상들이 일렬로 서 있어 소림사에 온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선무도가 어디에서 열리는지 몰라 헤매고 있을 때 벽안의 앳된 청년이 서툰 우리말로 알려 준다. 선무도장 안에는 무복을 입은 젊은이들이 맨발로 무예를 펼친다. 절도 있는 동작들과 흐트러짐 없는 눈빛이 실내를 긴장시킨다. 연마된 몸동작, 정신의 혼연일체, 모두 숨을 죽이고 하나가 된다.

일곱 동물의 동작에서 따온 선무도를 보며 나는 호랑이의 포효하는 듯한 강인함과 학의 고고함을 느낀다. 단순히 공격이나 방어의 무예가 아니라 내면의 정신세계를 함께 수양하는 무도임을 알 수 있다. 선을 통해서 무를, 무를 통해서 선을 추구하는 선무불이(禪武不二), 즉 정과 동이 끊임없이 상생하며 빚어내는 멋진 선(禪)의 예술이다.

선무도는 부처님의 가르침인 아나파나사티 경전에 근거를 둔 전통 수행법으로 몸과 마음, 호흡의 조화를 통해 깨달음을 구하는 움직이는 선이다. 신라의 화랑도와 조선의 승병 정신을 계승해 오다가 갑오경장 이후 승병제도가 폐지되고 일제의 문화말살정책으로 맥이 끊겼다. 그러다 몇 사람의 노력으로 다시 세계인의 수련법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는 중이다.

벽안의 젊은이들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다. 그들은 무엇을 구하러 동양의 작은 나라 절집을 찾아왔을까? 지켜보는 내내 신기하고 대견하다. 건강한 정신세계를 찾아 한적한 사찰에서 몸과 마음을 닦는 이방인, 안정된 미래를 위해 선진국으로 어학연수를 떠나는 우리의 젊은이가 잠시 교차된다. 행복의 조건은 각자 다르다. 하지만 거대한 흐름에 떠밀려가듯 자신을 잃고 중심을 잡지 못한다면 진정한 행복 찾기는 힘들 것이다.

아리따운 영국 아가씨가 동양의 사부를 위해 좌복을 깔아주고 예를 갖춘다. 하잘 것 없어 보이지만, 그것은 자기 관찰과 점검으로 이어지는 중요한 수련이다. 뿌듯하기보다는 엄숙한 무언가가 밀려든다. 어쩌면 선무도는 그녀에게 존재의 구원과도 같을지 모른다. 그녀의 선택과 앞으로의 수행을 위해 나는 뜨겁게 박수를 보냈다. 머지않아 벽안의 청춘에도 천년 미소가 깃들 수 있기를 빌어본다.

몇 분의 스님과 템플스테이에 참가한 청소년들, 외국인까지 모두 한 자리에 모여 점심 공양을 한다. 생각했던 엄격함이나 까다로운 규제는 보이지 않는다. 세속적인 욕심을 접고 참 나를 찾는 사람들, 사찰 문화를 체험하며 지친 심신을 정화하는 아이들, 그들에게서 연꽃 향기가 날 것만 같다.

혜각 스님과 차 한 잔을 나누며 대화를 나눈다. 조용조용한 말투와 선한 눈빛이 결이 고운 분이라는 인상을 준다. 시종일관 흔들림 없는 스님의 태도에서 느껴지는 내공, 남성적으로 보였던 선무도의 고요한 평화로움을 읽는다. 스님만의 독특한 향기가 실내를 환히 밝힌다.

차분해진 마음으로 마애여래좌상을 만나러 포장된 언덕길을 오른다. 골굴사는 1500년 전 인도에서 온 광유 스님이 불국사보다 약 200년 앞서 지었다. 주불인 마애여래좌상과 석회암 절벽을 깎아 만든 12개의 인공 석굴이 옛 모습 그대로 남아 있어서 한국의 둔황석굴이라 부른다. 길은 가파르지만 설렘으로 가득하다.

멀리 정상쪽에 4미터 높이의 여래불이 미소를 머금은 채 우리를 반긴다. 낯설지 않은 천년의 미소, 그 온화한 표정이 통일신라 시대의 석불임을 알려준다. 절의 초입과는 달리 마애여래불이 있는 산은 과거 속으로 시간 여행을 하는 것처럼 친근하다. 고난과 풍파 속에서도 미소를 잃지 않은 마애불, 저토록 한결같은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다면 억만 겁의 세월인들 고단하랴.

거대한 석회암을 깎아서 만든 계단을 조심스럽게 오른다. 작은 석굴들 속에 있는 앙증맞은 불상들과 눈인사를 나누고, 바위계단을 오르는 긴장과 스릴감도 좋다. 석굴을 파서 목조 기와로 입구를 장식해 놓은 이색적인 법당인 관음전 앞에서 나는 숨을 고르며 툭 트인 전망을 감상한다. 산만했던 마음을 훌훌 털어버릴 수 있는 이 귀중한 시간이 참으로 감사하다.

▲ 조낭희<br /><br />수필가
▲ 조낭희 수필가

마애불은 코앞에 있지만 가는 길은 만만치 않다. 머리 숙여 돌 천장 아래를 지나고, 앞에서 끌어 주며 서로를 챙겨주는 사이 마애불의 미소가 소리 없이 내 안에 깃든다. 목적지를 향해 가는 도상에서 우리는 많은 것을 깨닫는다. 자기와 남을 돌아보라고 여래불은 가파른 암벽 위에 자리를 잡고 있는 것 같다.

마애불 앞에 서서 나도 따라 미소를 지어본다. 그리고 멀리 동해를 바라본다. 별다른 노력 없이 몸과 마음에 병 없기만을 바라며 살아온 시간들이 겨울나무의 삭정이처럼 푸석거리며 떨어진다. 일상에서 깨어있는 의식으로 자신을 주시할 수 있는 자세, 쉽지 않지만 건강한 삶을 위해서 지향해야 할 과제다. 실천이 따르는 참된 믿음은 누구에게나 감동을 준다. 삶이 풍요로울수록 매스를 가할 수 있는, 그런 지혜를 갖춘 사람이 진정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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