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기림사
함월산(含月山)은 넉넉하게 기림사를 품고 있다. 몇 번을 다녀가도 그리움이 묻어나는 품격 있는 사찰이다. 일주문을 통과하면 넓고 완만한 숲길이 천왕문까지 이어진다.
기림사는 한때 불국사를 말사로 두었을 만큼 큰 사찰이다. 인도의 승려 광유가 창건하여 임정사라 부르던 것을 신라 선덕여왕 때 원효대사가 절을 중수하면서 `기림사`로 바꾸었다. 부처님이 생전에 제자들과 수행하던 승원 중에서 첫 번째로 꼽히며 당시 최초의 절인 기원정사에서 따온 이름인데 여전히 고찰다운 풍모를 자랑한다.
푸른 대숲이 겨울바람에 몸을 떨며 천왕문 입구를 밝힌다. 검(劍), 비파(琵琶), 탑, 용을 쥐고 있는 사천왕상이 오늘도 부리부리한 눈으로 사바세계의 중생들이 불도에 따라 올바르게 살아가는지를 살핀다.
저절로 긴장되는 순간이다. 그러나 이 문을 지나면 비로소 청정도량에 들어섰다는 것을 의미한다.
기림사는 불자가 아닌 사람들도 많이 찾는다. 삼천불상과 오백나한상, 대적광전의 삼존불 그리고 다양한 탱화와 건칠보살좌상 등 볼거리도 많지만, 사대부 집을 들어선 듯한 편안한 분위기도 한 몫을 한다. 대부분 전각들은 맞배지붕으로 장중한 인상을 주지만 넓은 경내는 여유로우면서도 안온하다.
십 오륙 년 전, 땅거미가 질 무렵 처음 기림사에 들렀다. 경내를 한 바퀴 돈 후, 잠시 쉬고 있는데 새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때마침 들려오는 저녁 종소리에 나는 빨려들 듯 마음을 빼앗기고 말았다. 어둠이 타종 소리에 몸을 떨며 고요히 내려앉았다. 어떤 음악과도 비교할 수 없는 숭고한 소리에 반해 나는 기림사의 새벽이 궁금했다.
그 후 몇 달을 벼루다가 이른 새벽을 달려 기림사를 찾았지만 신도가 아니란 이유로 거절당했다. 경비원은 나의 간절한 애원에도 단호했다.
국보급 보물이 많아 입장시간에만 허용한다고 했다. 간간이 새벽 예불을 드리러 온 불자들은 합장 하나로 쉽게 통과했다. 깜깜한 어둠 속에서 개 짖는 소리만 살벌했다. 그 당시 담장 높은 기림사가 그리 곱게 보이지는 않았다.
한 때의 쓴 기억을 회상하며 인적 드문 경내에 들어섰다. 정면 7칸의 겹처마 맞배지붕 목조건물이 보인다. 임진왜란 때 승군의 지휘소로 사용되었던 진남루이다. 처마를 받치는 새 날개 모양의 공포와 부재로 쓰인 화반의 꽃 모양이 볼 만하지만, 진남루는 문을 닫은 채 침묵 중이다.
갑자기 전각 기둥에 세로로 걸려 있는 주련의 내용을 아느냐고 동행인이 묻는다. 떠듬거리며 몇 자 읽어보지만, 흘림체로 쓰인 한자는 알 길이 없다. 글자들은 나의 답답함에도 아랑곳 않고 희디흰 도포자락을 휘날리듯 고고하다. 친근하면서도 결코 만만치 않은, 부담스러운 글을 동행인이 풀이해 준다. 나는 마음을 열고 귀를 기울인다. 겨울 햇살과 바람도 숨을 죽이고 요란하게 지저귀던 새들도 잠시 노래를 멈춘다. 서서히 눈앞에 한 폭의 산수화가 펼쳐진다.
“遠觀山有色 近聽水無聲
(원관산유색 근청수무성)
春去花猶在 人來鳥不驚
(춘거화유재 인래조불경)
頭頭皆顯露 物物體元平
(두두개현로 물물체원평)
如何言不會 只爲太分明
(여하언불회 지위태분명)”
“멀리 바라보니 산은 그 빛깔이 있고/ 가까이 들으니 물은 소리 없이 흐르네.
봄은 가도 꽃은 머물러 있고/ 사람이 다가가도 새는 놀라지 않네.
하나하나 제 모습을 드러내지만/ 만물의 참모습은 원래 평등한 것.
어떤 말로도 말할 수 없지만/ 너무나도 분명하다.”
멋진 오언율시다.`금강경오가해`에서 따온 글귀인데 기림사의 정경을 그대로 묘사한 듯하다. 짧지만 종교와 문학, 철학을 두루 아우르는 깊고 그윽한 글이다.
그런데도 나는 올 때마다 무심히 지나쳤다. 감동이 컸기에 나의 무지함이 더욱 커 보인다. 부족한 부분에 부끄러워하기보다 알고 있는 것에 교만해질 때가 많았다. 단청도 불상도 없는 한적한 진남루 앞에 서서 나는 내면을 살핀다.
말보다 본질의 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는 강한 울림이 오래도록 떠나질 않는다. 어떤 사물이나 상황 앞에서 그 참모습을 제대로 보려고 노력했던가. 누군가에 의해 나름대로 해석되거나 알려진 것, 혹은 주변에 끌려 참모습을 놓칠 때가 많다.
사고의 한계는 많은 것을 왜곡시킬 수 있다. 어쩌면 우리는 사유의 틀에 의해 알려진 인간화된 신과 자연을 보고 있지는 않은가 반문해 본다.
누가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가슴 뿌듯한 행복감이 밀려든다.
크리스천인 동행인도 종교의 경계를 허물고 고즈넉한 산사 마당에서 선시(禪詩) 속에 잠겨 든다. 같은 여행지도 동행인에 따라 감흥은 다르다. 그가 해박함을 풀어낼 때마다 숨어 있던 기림사가 깊은 속살을 보여주며 위용을 드러낸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참모습이 있다. 잠시 침묵하던 새들도 다시 노래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