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배 시인인 고형렬 시인은 최근 펴낸 자전적 에세이 `등대와 뿔`(도서출판b)에 김남주 시인이 옥중에서 은박지에 눌러 쓴 시 `단식`과 `일제히 거울을 보기 시작한다`를 소개했다.
고 시인은 8일 연합뉴스에 “남주 형이 죽기 몇 달 전에 제가 일하고 있던 출판사 사무실에 놀러 왔는데 그때 제게 준 것”이라면서 “20년 동안 마음속 깊이 간직하고 있다가 20주기인 올해 세상에 처음 공개하게 됐다”고 밝혔다.
그는 “형이 옥중에 있을 때 은박지에 눌러 쓴 시가 있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본 적은 없었는데 처음 보고 깜짝 놀랐다”면서 “은박지에 썼지만, 글씨가 반듯반듯하고 띄어쓰기가 정확했다”고 말했다.
또 “편지 봉투만 한 크기의 은박지에 시가 꽉 차있는 것을 보고 눈물이 났다”면서 “칫솔을 부러뜨려 한쪽을 갈아서 날카롭게 만든 뒤 은박지에 눌러 쓴 것 같다”고 추정했다.
“단식이 시작되었다/겨울에서 솜옷을 빼갔기 때문이다/얼음장 같은 바닥 위 등짝 밑에서/담요를 빼갔기 때문이다/주먹밥이 작아지더니/주먹밥에 박힌 콩알 수가 적어지더니/한 주에 한번씩 나오던 엄지발가락만 한/돼지고기가 안나왔기 때문이다”(`단식` 중)
“일제히 거울을 보기 시작한다 소스라치게 놀라/일제히 제 얼굴을 훔치기 시작한다 허겁지겁/피 묻은 제 손바닥을 문지르고/일제히 시치미를 떼기 시작한다(중략) 아무도 제 얼굴에 책임이 없다”(`일제히 얼굴을 보기 시작한다` 중)
고형렬 시인은 “가장 어려운 시대, 가장 깊은 곳에 갇혀 있던 사람이 쓴 시”라고 말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