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공항에서 베트남 호치민시티까지는 5시간이 걸린다. 12~13시간 걸리는 북미노선에 비해서 짧은 거리이기는 하지만 지루한 비행시간임에는 틀림없다.
포항-김포노선이 비행장 공사로 인해 지난 7월1일부터 폐지된 이후, 포항인들은 외국 가기가 더욱 힘들어 졌다. 신경주나 동대구로 가서 KTX를 타면 되지 않느냐고 하지만 여러 차례 갈아타야하기에 무거운 짐을 동반한 경우는 비행기나 직통의 리무진버스와는 또 다른 차원의 어려움이 있다.
와인 한잔하고 잠이나 잘까 하다가 영화나 한 편 보기로 했다. 기내영화를 뒤척여 보니 엘비스 프레슬리가 주연한 `Blue Hawaii`라는 영화가 있다. 1961년 작품이며 코미디에 가까운 영화이지만 엘비스의 노래가 좋아서 여러 차례 보았던 기억이 있다.
빙 크로스비의 `Can`t Help Falling In Love`가 엘비스의 달콤한 목소리로 불려진다. `No More`, `Moon Light Swim` 등 엘비스의 여러 편의 노래와 함께 감미로운 음악이 흐르며 영화 전편에 걸쳐 아름다운 하와이의 경관이 보여진다. 누구나 하와이 해변으로 달려가고 싶은 심정을 갖게 만든다.
아 그런데, 이곳 장면 중에 마을사람들이 함께 그물을 끌어 고기를 잡는 내용이 나온다. 엘비스와 그의 부모 및 친척들과의 대화중에 `그물을 끌어올리는데 힘을 보태지 않으면 고기를 먹을 자격이 없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얼마 전 필자가 예로 들었던 포항 여남동 바닷가에서의 고기잡이와 흡사해서 반가웠다.
지역을 알리는데 이와 같이 유명 배우나 가수들이 참여할 수 있다면 대단히 효과적 일 것이다. 더구나 아름다운 자연과 로맨틱한 분위기를 그려내는데 이러한 음악영화 제작과 같은 게 어디 있을까 싶다.
한시간 반쯤 지나 영화가 끝났어도 잠이 오지 않는다. 또 다른 볼거리가 있을까 찾다보니 `피끓는 청춘`이라는 한국영화가 눈에 뜨인다. 제목이 좀 유치해 보이기는 하지만 등장인물과 배경도시가 좀 아는 곳이라 틀어보았다.
이 영화는 충청도 한 중소도시에 위치한 고등학교인 농고와 공고의 남녀 싸움패들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코미디 비슷한 영화이다. 그곳에서 영화도 찍고 시사회도 했다는데 꽤 많은 관객들이 모였다고 했다. 필자도 심심하던 차에 오래전 군대생활 당시 잠시 머물렀던 그 도시의 1980년대 이야기를 재미있게 보고 있었다.
이 영화는 먼저 본 `Blue Hawaii` 같은 저명영화도 아니고 저명한 지역을 배경으로 한 것도 아니지만 그 곳 사람들의 큰 사랑을 받았을 것임에 틀림없다. 필자와 같이 다시 한번 가보고 싶은 이들도 생겨날 것이다.
귀국 전에 거주하던 로스앤젤레스에서는 필자가 근무하던 LA시청이며, 도심의 낡은 거리가 자주 영화촬영의 무대가 되곤 했었다. 가끔은 길이 막혀 돌아가거나 멀리 한쪽에서 촬영장면을 지켜보기도 했지만 영화 속에서 익숙한 건물과 거리를 발견함도 또 다른 희열이었다.
만일 포항을 무대로 영화 한편을 제작한다면 어떠한 배경과 내용이어야 할까? 다큐멘터리 보다는 무언가 로맨틱하거나 코미디적인 내용을 담고 있어야 할 것인데 내년 3월이면 포항KTX역이 개통되어 서울에서 많은 이들이 단시간에 포항의 청정해변에 도착할 수 있으니 영일대해수욕장의 아름다운 영상과 스토리를 그려내도 좋겠다.
영화감상이 끝나니 호치민의 탄소넛공항 도착시간이 다 됐다. 자주 이용하는 같은 항공사의 북미노선에 비해 비행기는 좀 작았지만 두 편의 영화 덕분에 좀 더 즐거운 여행이 된 것 같다. 한밤이지만 호치민의 날씨는 아열대의 여름답게 무척이나 덥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