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운동을 한 후 땀도 씻을 겸 목욕탕에서 목욕을 하고 있었다. 한 아버지가 어린 아들 3형제와 같이 목욕을 하는 것을 보았다. 아이들 하나하나씩 아버지가 때를 밀어 줬다. 때를 미는 동안 남아 있는 아이 둘은 장난을 치면서 즐겁게 목욕을 했다.
또 어느 날에는 목욕탕에서 50대 아들이 80대 아버지를 목욕시켜 드리는 것을 봤다. 아버지가 때를 밀기에는 힘이 부쳐서 아들이 씻어 드리는 것 같았다. 들리지는 않았지만 뭔가를 웃으면서 대화하는 장면은 보기에 좋았다.
나는 이런 장면을 보면서 가정에서는 젊거나 힘이 있는 자가 약한 가족을 돕는 것이 사랑임을 알았다. 이런 사랑 속에서 행복이 만들어지는 모양이다. 남편이 아무리 유능해도 집에서는 어린 자식과 아내보다 더 약한 사람이 되고 힘없이 늙어버린 아버지에게 우람한 아들이 정성껏 돕는 것을 사랑으로 생각했다.
행복에 대한 교육은 최소 단위인 가정에서 이뤄진다. 태어나자말자 사람은 사랑이 물씬 녹아 있는 어머니의 젖을 먹으면서 자란다. 유아기와 학생 시절을 거치면서 성공과 좌절을 맞보기도 하고 즐거움과 괴로움을 극복해 나가면서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제일 행복할 지를 배운다. 가정교육이 미래의 행복에 제일 기초가 된다.
삶은 고난의 연속이다. 이런 고난은 나누고 쪼갤수록 더 많은 행복의 향기를 내뿜는다. 괴로움을 이겨야 행복이 샘솟는 것은 흙탕물에서 우아하게 연꽃이 피어나는 것과 같다. 진정한 섬김과 배려란 힘이 있는 자가 약한 자를, 임금이 신하를, 주인이 종을, 부모가 자식을, 남편이 아내를 사랑할 때의 행동을 말하는 것 같다.
우리 사회에서는 생명과 자유는 어느 정도 보장돼 있다. 그러나 행복할 권리는 그렇지 못하다. 왜냐하면 그것은 훌륭한 저택 등과 같은 외적 요소보다는 보이지 않는 마음이나 정서 같은 내적 요소, 출세나 부자 등 세상적인 요소보다는 정신적, 영적인 요소가 더 크게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외적, 세상적 요소는 이기심을 발동시켜서 만사를 자기 뜻대로 하면서 남을 섬기는 자세 대신에 모든 것을 그의 노예로 만들어 군림하려고 한다. 한 번 노예 신분이 되면 그는 일생 끝까지 거의 일생 동안 그렇게 살아야 한다. 죽어서 다시 태어나야만 노예 신분을 벗어날 수 있다. 서양의 흑인영가도 모두 노예 신분에서 해방되기 원해 빨리 죽음이 오기를 기다리는 처절한 노래들이다.
이러한 처지에서는 내가 내 인생의 주인공이 되지 못하고 타인의 소유물이 될 뿐이다. 살아가는 과정은 평탄하지 않다. 지탱하기 어려울 정도로 얽힘과 고난, 고뇌가 질펀하게 깔려 있다. 진흙탕 같은 사회를 구두를 더럽히지 않고 지나갈 수 없다.
동양에는 삼강오륜이 있다. 그것에는 임금과 아버지와 남편이 신하와 아들과 아내를 배려하기 보다는 섬김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여기서 절대 군주제, 가부장제, 남존여비 사상이 태동했다. 오륜도 모두 인간사회를 상하관계로 규정하는 원칙이어서 신분의 차이를 명시해 준다. 과거 선조들이 살던 시대의 기준이었다.
이제는 강한 자가 약한 자를 먼저 돌보는 배려와 섬김의 정신이 필요하다. 그러나 아직도 이런 것이 준비가 덜된 상태다. 과거의 후유증으로 남아 있는 노폐물이 사회에 널리 깔려 있기 때문이다. 기득권이나 자기의 텃세를 지키려는 정신이 활개치고 있어서, 다가올 사회에서 생활의 기준이 될 `배려와 섬김`이 아직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다.
행복하려면 강자가 겸손을 습관화해야 한다. 즉 상대의 인격을 존중해 줘야 한다. 이럴 때 비로소 행복은 그의 가슴에 둥지를 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