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간다네, 간다네, 간다네…. 당신은 따뜻하고 환하고 포근한 방에서 잠들었으나, 우리는 혹한과 눈보라를 헤치고 눈길을 따라 걸어간다네…”
“우리는 간다네, 간다네, 간다네…. 마치 누가 쇠망치로 관자놀이를 때리는 것 같다”
19세기말 러시아 사회는 알렉산드르 3세와 니콜라이 2세의 반동정책으로 사회 전체가 침체기를 맞는다. 한편 농노해방 후 급속한 산업 발전은 러시아 사회의 분화와 해체를 촉진했다. 이러한 가운데 도시의 노동자들과 농촌의 농민들의 일상적 삶은 피폐해졌다. 노동자들과 농민들은 불안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면서 변화에 대한 열망을 표출했다. 러시아 지식인들은 예리한 촉수로 `시대적 징후들`을 감지함과 동시에 `현실을 압도해 나가는 외부적 힘의 메커니즘`을 읽어내려고 노력했다.
체호프 선집(총 5권) 4권에 실린 작품 `용무가 있어서`(1899)에서는 보험계원의 자살 사건을 조사하려고 지방 자치 사무소로 온 주인공인 예심판사가 세찬 눈보라로 1주야를 지체하게 되는 상황을 맞는다. 주인공은 지체하게 되는 1주야의 시간동안 농촌 현실과 그 현실을 살아내는 이들의 삶을 목도하면서, 자신을 성찰하고 19세기말 러시아 현실을 통찰하게 된다. 체호프는 주인공-지식인의 꿈을 통해 개인의 무의식에 박힌 `시대적 징후들`과 더불어 `시대정신`까지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첫 번째 인용문에는 주인공-지식인의 꿈에 자살한 보험계원과 고된 삶의 무게를 안고 일생을 살았던 말단 관리 노인이 눈보라치는 눈길을 서로 부축하면서 걸어가는 모습이 시각적으로 형상화 된다. 주인공-지식인의 꿈에 `우리는 간다네, 간다네, 간다네…`라고 노래하면서 그들이 등장하는 것은 주인공-지식인의 자아성찰과 현실에 대한 통찰과 연관된다. 그가 깨어있을 때 그의 가슴 속에 간직된 관념이 `꿈-무의식의 밸브`를 통해 유출되는데, 이를 통해 저자는 주인공-지식인으로 하여금 `현실의 문제`를 직시하게끔 하는 한편으로 현실의 지평을 확장해보려는 의도도 드러낸다.
두 번째 인용문에도 주인공-지식인의 꿈에 자살한 보험계원과 고된 삶의 무게를 안고 일생을 살았던 말단 관리 노인이 노래하면서 재등장한다. 여기에다 `마치 누가 쇠망치로 관자놀이를 때리는 것` 같은 감각을 덧붙이면서 체호프는 소통과 사회적 연대의식 없이 살아온 주인공-지식인을 깨우고 독자를 깨운다. 그 다음에 현재와는 다른 미래에의 전망을 암시하면서 시대정신에 호응해 새로운 삶의 미래로 나아가자고 넌지시 말한다.
체호프는 주인공-지식인이 꾸는 꿈의 시각화와 청각화를 통해 사회 주변부로 밀려난 소외되고 약한 이들과의소통과 연대가 필요함을 역설한다. 그리고 당대 현실에 대한 통찰로 고통스러운 주인공-지식인으로 하여금 전환시대의 징후들을 드러내도록 유도한다.
체호프와 그의 주인공-지식인의 현실에 대한 통찰은 새로운 미래를 향한 도정에 선 우리에게 `우리는 지금 어디에 서 있는가?`그리고 `우리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와 같은 질문을 자연스럽게 던지도록 이끈다.
21세기 후기 자본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자아성찰로 자기전환을 이룸과 동시에, 자기혁명으로 새로운 미래로 나아가야 한다. 여기에는 나와 너, 정치인과 대통령까지도 예외일 수 없다.
이 시점에서 꼭 묻고 싶은 게 몇 가지 있다. 이 시대에 과연 지식인은 존재하는가? 존재한다면 사회의 리트머스 시험지 역할을 하고 있는가? 사회의 방향지시등과 같은 소임을 다하고 있는가? 혹시 국민들에게 탐욕과 이기심, 권위와 독선으로 똘똘 뭉친 이들로 비춰지진 않는가?
이 시대에는 `깨어있는 국민`이야말로 참 지식인이다. 이들이 늘 깨어서 서로 소통하고 연대할 때만이 새로운 미래가 열린다. 새로운 꿈과 새로운 희망이 싹튼다.
나태주의 시 `기도 1`의 일부를 인용하면서 글을 맺는다. `나`의 자리에다 `우리`와 `대한민국`을 넣어서 다시 읽어보아도 좋겠다.
“그리하여 때때로/ 스스로 묻고/ 스스로 대답하게 하여 주옵소서/ `나`는 지금 어디에 와 있는가?/ `나`는 지금 어디로 향해 가고 있는가?/ `나`는 지금 무엇을 보고 있는가?/ `나`는 지금 무엇을 꿈꾸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