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오는 듯 하면서도 아직 추운 날이 많다. 몇 주전 인근 시골마을을 방문했을 때 나물 캐는 아주머니들을 본 것 같은데 동네 공원의 잔디밭은 아직 푸른 싹을 내보이지 않고 있다.
지난 여름에 동네 빈터를 가득 채우던 억새며 잡초들이 말라버리니 보이는 것은 크고 작은 쓰레기들이다. 빈터만이 아닌 골목길에도 라면컵, 빈 플라스틱 병 등 버려진 것들이 많다. 큰길가는 좀 덜하지만 조금만 안쪽 골목으로 들어가면 쓰레기 천지인 이곳이 교외의 신시가지이다.
상가 골목 안은 주차문제가 심각하다. 세울 곳을 찾기도 힘들고 교행도 힘들다. 새로 세워진 건물들이고 신시가지인데도 주차시설이 제대로 준비되어있지 않음이 안타깝다. 일보러 잠시 동네 인근에 나올라치면 마주치는 이러한 풍경들이 우울함을 준다. 분명 고쳐져야 할 문제들인데 하나같이 방치되어 있다.
얼마 전 동계올림픽 때 우리나라 출신의 저명 피겨스케이터가 억울하게 금메달을 놓치게 되어 많은 이들이 화나고 억울하고 우울했었다. 직접적인 내 일이 아닌데 이로 인해 우울했었다.
거의 같은 시기 금융권을 통한 개인정보 유출사건과 그로인한 파장이 아직도 큰데 많은 이들이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으며 우리사회에 대한 자괴감이 너나 할 것 없이 컸었다고 본다. 그 당시 통상적인 업무로 아침 9시에 단골은행에 갔다가 닫힌 문 앞에 줄지어선, 그리고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는 분들의 모습을 보았다.
금융위기 이후 아파트 가격 하락 충격으로 많은 이들이 집단 우울증 상태를 보이고 있다고 한다. 물론 아파트 가격에 대한 해석들이 다를 수 있고 이에 대한 개인들의 사정이 다를 수 있지만 꽤 많은 이들이 대출이자 지불에 어려움을 겪고 있고 집 하나가 전 재산인 많은 시민들이 재산가치 하락으로 우울증을 겪고 있다고 들었다.
살펴보면 우리 사회를 우울증에 빠트리는 일들이 매우 많다. 우리의 경제가 많이 발전했다고는 하지만 과거와 같은 빈곤은 없어졌다고 하지만 불황으로, 남북 대치 및 종북 논란으로, 학력경쟁의 스트레스 등으로 각 가정이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다.
요즈음 각 개인의 우울증의 심각함에 대해서 그 예방 및 치유의 중요성에 대해서 많은 논의가 있어 왔다. 하지만 집단적인 우울증은 어떻게 진단되고 치유될 수 있을 것인가? 개인적인 우울증과 집단적인 우울증은 다르면서도 엄격하게 분리하기도 힘들다. 사회가 우울하니 개인적인 일들도 우울하게 전개되기 쉽고 각 개인들이 우울하니 사회현상 자체도 우울하게 표출되기도 하는 것이다.
하지만 살다보면 우울하기만 한 것이 아니다. 일상에 기쁜 일, 슬픈 일이 없을 수 없는 것이다. 기쁜 일이 있으면 우울함이 그때 그때 잊혀지기도 한다. 물론 심각한 고민이 잠시 기쁘다고 해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 기쁘거나 웃는 순간들이 내 자신을 만성적인 우울증에 빠짐을 막아줄 것이다.
아주 오래전 `웃으면 복이와요`라는 TV프로그램을 보면서 깔깔대던 생각이 난다. 웃으면 그때뿐이라 하더라도 마음이 후련해진다. 요즈음 프로그램 중 `진짜 사나이`의 연예인 장년 병사들의 고로쇠나무 스키훈련을 보면서 웃음을 참지 못하던 것도 그 예이다.
하지만 부조리하거나 불안정한 사회적인 구조 내지 모습에서 오는 우리 시민들의 집단적인 우울함은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 것인가? 잠시 웃으며 잊어버린다 해서 그러한 문제들이 해결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나, 마을공동체가 힘을 합쳐 조그마한 문제부터 풀어나가고, 범국민적인 사회운동을 통해서 좀 더 근원적인 것들을 풀어나가고…. 요즈음의 불확정성시대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러한 공동체운동일지도 모르겠다. 문제는 누가 언제 어떻게 리드해 나가느냐가 관건일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