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8회 이상문학상 작품집` 편혜영 등 지음 문학사상사 펴냄, 364쪽
한국문학을 사랑하는 모든 독자들이 매년 손꼽아 기다리는 `2014 제38회 이상문학상 작품집`(문학사상사)이 출간됐다.
한 해 동안 발표된 작품들 중 최고의 작품으로 평가되는 중·단편소설만을 모아 싣는`이상문학상 작품집`은 합리적이고 공정한 심사 과정과 한국소설 문학의 황금부분을 선명하게 부각시키는 탁월한 작품성을 지닌 수상작으로, 현대소설의 흐름을 대변하는 소설 미학의 절정으로 일컬어지고 있다.
2014년 이상문학상 대상작은 김윤식, 서영은, 권영민, 윤대녕, 신경숙 등 심사위원 5명의 심사숙고 끝에 편혜영의 `몬순`으로 선정됐다. 편혜영은 그동안 인간의 내밀한 고독과 불안을 치밀하고 건조한 문장으로 형상화한 작품을 발표하며 평단과 독자들의 호평을 받아왔다. 올해의 이상문학상 대상작인 `몬순`의 곳곳에 산재한 불안과 관련된 소재나 장면 역시 그동안 지속되어온 작가의 관심과 연결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특히 거대한 불안과 대면하는 과정에 주목하였던 종전 스타일과는 달리, 인간의 삶 자체가 겪지 않을 수 없는 존재론적 불안을 집요하게 응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작가 세계의 진전을 기대할 만하다.
이번 작품집에는 대상 수상작인 편혜영의`몬순`과 자선 대표작 `저녁의 구애` 외에도 대상과 치열한 경합을 벌였던 우수상 수상작인 김숨의 `법(法) 앞에서`, 손홍규의 `기억을 잃은 자들의 도시`, 천명관의 `파충류의 밤`, 조해진의 `빛의 호위`, 윤고은의 `프레디의 사생아`, 이장욱의 `기린이 아닌 모든 것에 대한 이야기`, 윤이형의 `쿤의 여행`, 안보윤의 `나선의 방향` 등 삶에 대한 깊이와 실험성이 돋보이는 작품들이 고루 포진해 읽는 재미와 맛을 더해주고 있다.
작품 외에도 김윤식, 서영은, 권영민, 윤대녕, 신경숙 등 심사위원 5인의 심사평도 함께 실려 있어 각각의 작품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
편혜영의 `몬순`을 대상 수상작으로 선정하는 데 있어 심사위원들은 작가가 그동안 즐겨 다루어온 주제와 기법에 새로운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며 이 작품의 무게와 그 소설적 성취를 높이 평가했다.
심사를 맡은 김윤식 평론가는 “삶의 난감함을 겪는 우리 모두에게 질문을 던지는 소설”이라고 이 작품의 우수성을 주목했고, 서영은 소설가는 “무심심한 단어 하나하나가 돌연 의미심장한 주제로 바뀌는 것이 매력”이라고 이 작품의 무게를 인정했다. 권영민 평론가는 “주인공의 삶에 내밀하게 자리 잡고 있는 고통과 그 비밀이 인간의 존재 자체를 위협하고 있는 불안의 상황과 절묘하게 접합되어 있음”을 주목했다.
`몬순`은 아이의 죽음을 서사의 바탕의 깔고, 제목이 암시하듯 삶의 불확정적인 요소들을 집요하게 응시한 작품이다. 더불어 관계의 틈에 도사리고 있는 극복할 수 없는 괴리감과 단절감이 `단전`의 상황에 빗대져 작가만의 건조하고 치밀한 문체로 유려하게 서술돼 있다. 그 어떤 것도 확실하거나 증명되지 않는 삶, 부조리함이 어느덧 전제로 작용하는 삶 속에서 주인공은 실체 없는 존재로 변해가는 자신을 다만 무기력하게 지켜볼 뿐이다. 관계로 표현되는 삶의 생태성이 무너져가는 현실을 압축해서 드러낸 이 작품은 반복되는 생활 속에 함몰돼 놓쳐버리고 말았던 진실의 무수한 파편들을 보여주고 있다.
대상 수상작 외에도 학교폭력 가해학생의 아버지가 겪는 다양한 상념과 혼란을 통해 선과 악의 근본적 정의에 대해 질문한 김숨의 `법(法) 앞에서`, 기억을 모두 잃고 한 일가가 파국으로 치닫는 과정을 통해 삶의 균열을 그린 손홍규의 `기억을 잃은 자들의 도시`, 절박한 생존본능을 내포한 파충류의 기억을 통해 삶과 죽음의 양면성을 표현한 천명관의 `파충류의 밤`도 눈여겨볼 작품이다. 또한 두 세계에 관한 기억과 기록을 치밀한 구도로 교차 조명하며 숨을 불어넣는 작가적 역량이 돋보이는 조해진의 `빛의 호위`, 유일무이한 어떤 가치가 상업적 포즈에 휘둘리면서 점차 소멸해가는 과정을 그린 윤고은의 `프레디의 사생아`도 고유한 개성을 발하는 작품이다. 아울러 기린불에 대한 맹목적인 사랑에 빠진 한 남자의 이야기를 통해 참과 거짓의 정의에 질문을 던지는 이장욱의 `기린이 아닌 모든 것에 대한 이야기`, `쿤`이라는 상징을 통해 타자화된 삶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아를 찾아가는 여정을 다룬 윤이형의 `쿤의 여행`, 본론과 각주로 이어진 독특한 소설 쓰기로 숨은 역량을 보여준 안보윤의 `나선의 방향`도 주목해볼 만한 수작이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