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찬 규
열매는 그 다음 일
잎보다 꽃을 먼저 내보내기 위한 것이었으니
사과나무에게 겨울은 그런 것이었으니
참으로 갸륵하다
꽃이 피는 이유만으로
꽃이 피는 이유만으로
내 눈이 내 귀가 새삼 심장박동 소리가
새롭다 내 몸이 내 맘이
꽃이 피는 이유만으로 삼라만상이
다 이유가 되고
다 용서가 되니
울고 울고 울다 지쳐 울던 새들도
갈 것이라 왔다 봄도 사랑도
봄이 오는데 새삼 무슨 이유인가
갈려고 온다 봄은 눈물 멈추기도 전에
봄이 오는 이유는 꽃을 피우고, 그 꽃을 떨어뜨리고 가을의 결실에 이르기 위해서가 아닐까. 그런데 시인은 가을의 결실을 얻기 위해 봄이 온다고 말하기 싫어한다. 왜냐하면 꽃이 피는 그 자체가 경이로운 일이기 때문이다. 봄이 오면 모든 것이 용서가 된다고 말하는 시인의 시안이 깊고 융숭하다. 올봄 새삼 봄이 오는 이유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볼일이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