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 혁 주
시인인 척 뻥치지 말라고 한다
곰팡내 나는 책장을 무심히 넘기다가
간간 뾰족이 연필 깎는 생이라고
비 맞으며 수런수런 콩 포기 옮기다가
때때로 개울물 탐방거리는 초막의 한 때
슬프냐 해서 그렇다 하니 시인인 척 한다고
납작해진 영혼의 종잇장 위 물오리 떼
밥숟갈 흐릿해지는 페이지마다 돋아나는 시(矢)
시인이 느끼는 행복, 슬픔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리라. 곰팡내 나는 책장 넘기며 뾰족하게 연필을 깎으며 시인은 행복을 느끼기도 하고 깊은 슬픔에 젖기도 하는 것이다. 비 맞으며 수런수런 콩 포기 옮기다가 때때로 개울물 탐방거리는 전원에서의 한 때도 마찬가지다. 그게 인생이다. 슬픔도 행복도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어디서 무엇을 하더라도 어떻게 느끼고 마음먹느냐에 달려있는 것이리라.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