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진 규
내리던 달빛
수척한
내 비애의 장신(長身)처럼
한 그루 감나무도 아직 그렇게 있을까
지금은
여기 와 있네
수유리 종점 화계사 입구
십년을 견딘 변두리
내 주거(住居)의 이 좁은 뜨락을
싸늘한 달빛 내리고 있네
한밤에 혼자 일어나
그대를 다시 만나고 있네
불꽃같이 타올랐던 청춘의 시간들 위로도, 이제는 한 생을 관조하는 노년의 시간들 위에도 달빛은 비치고 있다. 사랑과 문학과 혹은 사상과 그 어떤 소중한 생의 덕목 위에도 달빛은 비춰졌고 비록 번성하고 뜨겁게 달아올랐던 어떤 것들이 시들고 소멸되어가는 과정에 놓여있다 하더라도 그 달빛은 변함없이 그것들과 함께 하는 것이다. 시인은 깊은 마음의 눈으로 그 달빛을 바라보고 있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