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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 멈추어 걸러내고 새롭게 떠나는 길

등록일 2013-08-16 00:35 게재일 2013-08-16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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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석수 신부·성요셉복지재단 상임이사

폭염이 떠날 줄 모르고 매미는 지칠 줄 모른다. 그러나 처서가 지났기에 한 밤 중 풀벌레 소리 듣는 호젓함 그 누가 앗아갈 수 없는 즐거움이다. 몇 년 전 백담사에 들러 여유로움을 누린 적 있었다. 다리를 건너면서 흐르는 개울에 쌓인 돌탑, 물장난 소리와 어머니와 함께 돌을 쌓아가는 아이들의 모습이 남았다.

경내에 들어서자 처마의 가지런한 모습처럼 댓돌에 놓인 하얀 고무신의 행렬이 인상적이었다. `묵언`이라는 글씨를 본 순간 한 낮의 열기보다 더 한 치열함으로 살아가는 침묵의 수행자들이 있다는 전율을 잊을 수 없다. “내려올 때 보았네. 올라갈 때는 못 본 그 꽃” 고은 시인의 짧은 시를 읽으면서 내 중심의 활동에 빠져 소중한 것을 놓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다시금 돌이키게 했다.

컬린 터너는 “위대한 인물들은 모두 혼자만의 시간을 즐겼다”고 했다. 기억력으로 지식을 얻는 단계를 넘어 지혜를 추구하는 시간을 가진 것이리라. “침묵으로 들어가는 것, 완전한 고요함을 가지는 것이 내면의 소리를 활성화하는 법을 배우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했다.

교수들에게 생각할 시간을 갖도록 세계 유수의 대학들이 요구하고 있고 탁월한 기업가들은 방해받지 않는 자신만의 시간을 가지며 현재를 정리하고 미래를 찾아가고 있다. 역사에 길이 남는 정치인들도 다양한 장소에서 자신만의 시간을 가지고 통찰력을 얻었고 마침내 그것을 발휘했다. 넬슨 만델라는 27간의 감옥에서 출소하여 10만명의 군중에게 새로운 사회를 제시했다. “아파르트헤이트에는 미리가 없습니다. 우리 흑인들이 총과 폭탄을 들고 과격한 저항을 했던 것은 모두 스스로를 지키고 정당한 권리를 되찾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습니다. 아파르트헤이트가 철폐된 지금, 우리 모두 힘을 합하고 단결하여 민주적이고 자유로운 사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침묵은 숙고의 시간이며 생각의 여과기이다. 일상의 삶에서 침묵으로 소음을 걸러내고 온갖 정보를 걸러내며 새로운 방향을 찾을 수 있을까. 그에 대한 답으로 컬린 터너는 자신만의 후퇴장소를 마련하라고 했다. 즉 “다락방이나 지하실이라도 좋다. 당신은 모든 것을 떠날 수 있는 자신만의 세계를 꾸며라”고 했다. 한 평의 작은 공간이라도 방해받지 않는 자신만의 장소에 머물 수 있다면 치열한 전투를 통해 삶에 긍정적 변화가 일어날 수 있을 것이다.

봉쇄수도원도 아니면서 한 적한 시골에 터를 잡고 각자 몸 둘 장소를 만들어 침묵으로 생활하는 이들이 있다. 가끔씩 찾아가서 그분들을 뵙고 차 한 잔을 얻어 마시고 오는 것만으로도 힘이 된다. 그들은 먼 길을 걸어 성당에 다니면서 지역 주민의 농사를 거들어 주기도 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삶의 조건을 살펴보면 가장 불안정한 삶을 선택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먹을 걱정 없이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살아가고 있다. 좁은 골방 같은 처소에서 그들은 하느님 말씀, 성경을 벗으로 침묵으로 살아가고 있다. “너희는 멈추고 내가 하느님임을 알아라”는 시편의 말씀에 따라 멈추고 하느님을 알아가는 기쁨을 누리고 있다. 말씀 앞에 침묵으로 멈추어선 이들의 삶, 근원에서 끌어올린 행복한 미소가 아니겠는가.

`아주 특별한 순간`의 저자 안토니오 신부가 침묵 피정을 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그는 침묵 피정으로 “우리는 조금 말하고 하느님이 더 말씀하시도록 침묵합니다”는 말씀에서 자신을 비우는 자세와 함께 하시는 하느님께로 자신을 열어두는 자세를 설명했다. “네 길을 주님께 맡기고 그분을 신뢰하여라. 그분께서 몸소 해 주시리라”는 다윗의 자세를 배우게 한다. 침묵으로 모든 소음을 걸러내고 자신을 내어 맡긴 주님의 손길은 삶의 어떤 위기에도 위로요 일어설 힘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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