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로상담을 `세 번의 인터뷰와 자욱한 먼지`라고 진로상담의 시조인 파슨즈(Parsons)가 말했다. 그만큼 상담결과를 얻기가 힘든다는 것을 뜻하는 말일 것이다. 세 번의 인터뷰는 무엇을 뜻하느냐하면 먼저 자기에 대한 이해 정도를 알아보고 방법을 제시하는 것을 말한다. 둘째는 직업세계에 대한 이해 정도이고 세 번째는 의사결정능력에 대한 인터뷰를 말한다. 그런데 `자욱한 먼지`라니 그것은 무슨 말일까. 진로탐색을 위해 검사도 해보고 정보도 찾아보고 고민도 해보고 상담가와 함께 노력을 하긴 했는데 명쾌한 결론은 나지 않고 아직도 계속 탐색해야하는 그런 상황을 표현한 것이다.
작년 말 작은 아들이 중3이었다. 녀석의 친구들은 학원이나 자기주도학습 캠프를 신청해서 학업에 열을 올릴 때 그야말로 집안에 틀어박혀 폐인이 되었다. 그동안 다니던 학원도 다 끊고 자신이 알아서 공부하겠다는 선언을 하고 묻을 걸어 닫았다. 3개월 지나면 고등학생인데 달라지겠지 하고 말았지만 점점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서 출근하는 나와 아내와는 얼굴 볼 시간이 없이 잠든 모습이 되어갔다. 혹시 은둔형 외톨이가 되는 것은 아닐까 걱정이 되기도 했다. 일찍 퇴근해서 돌아보아도 드러누워 핸드폰만 만지작거리고 있고 내색은 안했지만 속으로는 걱정이 되었다.
3월이 되었고 교복을 입고 입학식 후 첫 날 바로 야간자율학습을 하고 밤 10시 넘어 들어오는 아들의 얼굴이 환했다. “처음 하는 야간자율학습이 좀 힘들진 않더냐?”란 질문에 “시간이 오히려 모자라던데요”라는 의외의 대답을 들었다. 그 말이 하도 신기해서 이유를 물어보니 자신은 목표가 생겼고 그것 때문에 열심히 하느라 시간이 부족할 지경이라는 것이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녀석의 중3에서 고1 넘어 가기 전 3개월이 스스로 진로를 찾는 시간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해보니 녀석의 방에는 책이 늘어났고, 그것을 읽으면서 저 혼자 사색하는 시간들을 보낸 것이었다. 밤새 책을 읽었으니 낮에는 잠을 잘 밖에 그것도 모르고 우리는 속으로 걱정을 했었다.
녀석의 3개월은 진로탐색의 가장 귀중한 시간이 되었다. 상담해주는 사람도 없지만 자유와 여유 속에서 자신의 이해하고 세계를 이해하고 의사결정능력을 높여 진로에 대한 깨달음을 어느 순간 얻은 것이다.
현 정부가 추진하는 자유학기제는 바로 이런 취지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학력과 성적향상에 내몰린 학생은 숨 쉴 틈도 없이 학원과 학교를 맴돌다가 진로에 대한 깨달음도 없이 주변의 요구에 의해 진로를 결정하기 쉽다. 결국 그릇된 선택을 하는 경우가 늘어났고 현재 대학생의 절반 넘는 수가 재수나 전과를 생각하며 졸업 후에도 전공을 못 살리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한다. 이것은 얼마나 많은 전과나 편입 준비생, 재수생들이 있나 확인해보면 바로 드러난다. 자신이 하고 싶은 것, 자신이 잘 하는 것은 다 접어두고 성적과 부모의 뜻에 의해 진로를 결정하는 것이 얼마나 많은 불행한 젊은이들을 만들어내는지 모른다.
다시 진로상담으로 돌아가서 학교 현장에서 진로상담을 해보면 참 매력 없는 상담이라는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성숙하지 못한 학생들이 깨달음에 이르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진로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없는 아이들을 없다. 그러나 자신을 잘 이해하지 못하거나 세상에 대한 앎도 부족할뿐더러 우유부단함까지 갖추고 있어서 구제불능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그러나 녀석들은 결론이 나지 않아도 상담과정과 자신에 대한 관심에는 무척 즐거운 듯하다. 그러므로 자주 “너의 꿈은 뭐냐”라고 물어주는 사람이 주변에 있는 것은 절대적으로 좋은 일이다. 꿈에 대한 질문을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 받아보는 녀석도 있을 거란 생각이 든다. `내가 뭘 해야 하지. 앞으로 뭘 하고 살아갈까?`이런 질문은 언젠가 마침내 마침표를 찍을 날이 온다. 그러나 그동안 적극적으로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것과 그냥 목표 없이 마침표에 도달하는 것은 엄청난 차이를 나타낼 것이다. 그러므로 진로상담은 끊임 없이 목표를 묻는 과정이다. 물론 상담을 해보면 이런 녀석도 있다. 귀차니스트. 녀석에겐 만사가 다 귀찮은데 자신의 진로를 생각해보고 고민해본다니 참으로 귀찮은 일이다. 또 이런 녀석도 있다. “선생님 이 직업 다하면 안되요” 그래도 녀석들은 먼 후일에는 어떻게든 직업을 가지고 살아갈 것이다. 꿈을 이루었던지 꿈이 아닌 삶을 살고 있던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