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달여 지난 포항 산불
주말 대낮, 화마가 도시 중심을 순식간에 집어삼킨 `포항 용흥동 산불`이 발생한 지도 한 달이 지났다. 38일 째인 지난 14일 다시 찾은 `최대 피해지역` 용흥동 우미골은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고요했다.
불에 탄 집을 고쳐 쓰기 위해 남겨 둔 몇 몇 곳을 빼고는 피해 주택 대부분이 철거된 상태였다. 일부분 피해를 입은 주택들은 그사이 도색을 하고 창문을 새것으로 바꾸는 등 예전의 모습을 갖췄다.
손수레를 끌고 장을 보러가는 주부, 출근을 준비하는 남성, `삼삼오오` 모여 장기를 두는 노인들까지…. 이날 우미골에서는 여느 마을처럼 평화로운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주민 김모(75)씨는 “불과 한 달 전 일인데 마치 산불이 난 지 오랜 시간이 흐른 것 같은 느낌이다”며 “처음에는 정신적 충격이 컸는데 서서히 회복되더니 이제는 일상생활로 돌아오게 됐다”고 말했다.
운 좋게(?) 피해를 면한 주민들은 이렇듯 일상에 적응했지만 보금자리를 잃은 사람들은 대부분 이곳을 떠났다.
마을 사람들은 몇 십년 살던 집이 하루 아침에 불에 탔는데 여기서 살고 싶겠냐며 다들 울며 겨자먹기 심정으로 마을을 떠났을 것이라고 짐작했다.
포항시는 조례에 따른 보상금과 각계에서 들어온 성금 13억3천200만원을 피해 주민 58세대 118명에게 전달했다.
이 돈으로 피해건물을 리모델링해 사용할 예정인 일부 주민을 제외한 대부분이 전·월세를 얻어 정든 마을을 떠난 것이다.
이처럼 주민들은 가까스로 몸 하나 뉘울 곳은 마련했다.
하지만 세간살이 하나 제대로 갖추진 못한 주민들에게 산불의 상처는 아직 아물지 않았다.
피해 주민 상당수가 월세 10만~15만원짜리 슬레이트로 만들어진 `판자집`에서 제대로 된 생필품도 갖추지 못한 채로 살아가고 있다.
김인순(67·여)씨는 “불이 났을 때 집안에 들어있던 가전제품, 식기, 옷가지 모두를 잃어 빈몸으로 월세 15만원짜리 방에 이사왔다”며 “주변 지인들이 전해준 물품으로 당장에는 그럭저럭 살아가고 있지만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막막하다”고 말했다.
백영식(57)씨또 “27년간 살아 고향처럼 느껴지는 곳을 차마 떠날 수 없어 전소된 집을 리모델링 해 사용할 계획이나 보상금이 턱없이 부족해 답답하다”며 “정부에서는 이번 사고를 계기로 후에 똑같은 일이 발생했을 때 피해를 입게 될 주민들을 위한 보상규정을 마련해 이들의 정신적·육체적 고통을 최소화 시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포항시 관계자는 “여러 차례 대책회의에서 이재민들에 대한 보상기준이 약하다는 의견이 쏟아진 만큼 보완책 마련을 강구토록 하겠다”고 말했다.
/박동혁기자 phil@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