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正義)에서 의(義)자는 양(羊)과 나(我)를 합한 글자로서, 공동체에서 양고기, 즉 먹을 거리를 고르게(正) 나누어 갖는 것을 의미한다. 논어에서는 정의(正義)란 `올바른 논의`라고 했다. 이는 `균등한 분배와 합리적인 업무`를 강조하는 말이다. 서양에서는 정의(justice)를, `자기에게 분배될 수 있는 몫을 그 자신이 가지게 하는 것`으로 풀이한다.
동양철학에서 인간은 누구나 기본적으로 사랑과 정의로운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이것은 인간의 본성으로서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자기의 몫이란다. 이는 우리 마음에서 수오지심(羞惡之心·옳지 못함을 부끄러워 함)으로 나타나며, 자기의 잘못여부에 대해 양심껏 성찰한 결과이다. 이를 사람다움의 가장 큰 요소로 보았다.
고대 동양에서는 인간의 마음에 정의심을 가질 때, 정의는 자율적, 그리고 자주적으로 작동할 수 있다고 했다. 정의는 정치를 효율성이나 경제성만을 위해 운영되지 않게 한다. 정의란 균형이 공동체 정신에 기초가 된다. 정의가 부족한 사회일수록 그것에 대한 요구는 더욱 거세진다. 양고기를 일부가 독차지함으로서 구성원이 제 몫을 가지지 못할 때, 백성은 배고픔과 부족함을 느낀다고 했다. 그래서 고르고 바른 분배, 합리적인 일 처리 등에서 정의가 크게 작용하기를 갈망했다.
공자의 국가 경영 목적은 더 많은 생산에 두지 않고 재화가 고르게 분배되는 정의로운 사회 건설에 뒀다. 즉 공자의 정치 목표는 재화의 축적에 목적이 있는 경제성장에 두지 않았다. 실제로 백성은 현실이 불의할 때 원망과 억울함을 느끼고, 그것은 분노로 변한다. 공자는 권력자의 이익 추구는 힘 있는 자의 이기심에서 비롯됐다고 했다. 이러한 분노는 타인의 처지를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오직 자기의 이익만을 추구해 재화 등을 독점할 때 발생한다고 했다. 이를 공동체가 붕괴되는 통로로 보았다. 유교의 경제사상은 오늘날 자본주의가 기획하는 자유시장 경제가 아니고, 분배와 유통을 원활하게 하는 체제를 강조했다. 이익을 추구하는 시장영역과 정의를 중시하는 공공영역을 구분했다. 그래서 공평성과 공정성이 이뤄지는 사회 건설을 바랐다. 즉, 유교에서 국가 경영자는 모자람보다는 고르지 않음을, 가난을 근심하기보다는 평안하지 않음을 걱정하라고 했다. 고르면 가난하지 않고, 화목하면 모자라지 않고, 평안하면 근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불의한 사회를 정의롭게 만들려는 생각과 실천은 유교의 핵심주제가 됐다. 공공 영역의 핵심은 `정의`이다. 부정의에 대해서는 합당한 복수를 하지 않으면, 그 조직은 흔들린다고 했다. 정치가는 정의에 밝아야 한다고 했다. 모두가 정의를 공유하는 정치, 국민과 함께 하는 정치, 너와 나가 우리가 돼 함께하는 `여민정치`를 지향했다.
정의란 개인적으로는 자기 행동에 대한 수오지심 여부에서 시작하고, 사회적으로는 증오심으로 표현된다고 했다. 증오심이란 공동체적인 부끄러움, 즉 공공적 수치심을 말한다. 일반 수치심이 개인적인 덕성이라면, 증오심은 공적인 덕목이 된다. 그러므로 폭정에 저항할 수 있다. 반파쇼 반독재를 할 수 있는 최후의 보루 역할을 한다. 심지어 폭정으로 인의를 해치는 왕은 쫓아내는 것이 자연권으로서 합당하다고 했다. 그런 자들이 공직에 취임해 공적 지위를 사적 욕망을 위한 도구로 삼을 때, 정의가 정치 분야에서 부각되기 시작한다. 제 몫을 챙기면서 남의 사정은 거들떠보지도 않는 동료에 대한 미움, 제가 저지른 불법을 합법화하는 정치가에 대한 분노, 생명을 함부로 대하고, 또 죽이는 권력자에 대한 증오심은 정의감을 태동시킨다. 공자는 `정당한 복수는 옳다`고 했다. 권력을 사익 추구에 사용하는 군주는 일부(一夫·한 사람의 남자일 뿐)로서 역성혁명의 대상이 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