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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신 쓰는 대통령 호소문

등록일 2012-11-19 19:55 게재일 2012-11-19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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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경우 편집국장

국민여러분, 대통령입니다. 날씨가 추워지고 있습니다. 우리 주변의 어려운 이웃들에게 조금 더 사랑과 관심을 보여주어야 할 때입니다. 저는 지금 아세안 정상회의 참석차 캄보디아 프놈펜에 와 있습니다. 해외에서 보는 대한민국은 그야말로 배우고 싶고 부러운 나라였습니다.

지난주엔 태국과 인도네시아를 방문해 우리나라의 품격을 한 단계 더 높이고 귀국했습니다. 제가 귀국하자마자 내곡동 사저 특별검사팀이 수사기간 연장을 신청해 왔습니다. 이에 앞서 청와대 경호실에 대한 압수수색영장이 발부되었습니다. 내곡동 사저 부지매입 의혹사건은 제가 떠나기 전에 이미 특검 수사가 진행되고 있었고 제가 해외에 있는 동안에도 국내에서는 여전히 특검팀의 내곡동 사저 관련 수사가 톱 뉴스가 되고 있었습니다.

국민여러분. 저는 지난 2007년 대통령 선거 당시 약속했던 대로 취임 이후 논현동 자택을 제외한 사재 331억원을 사회에 기부했습니다. 그런 제가 퇴임 후 살 집을 짓기 위해 땅을 시세보다 싸게 사고, 부동산 실명제법을 위반하고 증여세를 포탈하려고 권력형 비리를 저질렀다는 의심을 받을 때는 정말 부끄럽고 힘들었습니다. 특검은 장성한 아들(34)에게 집을 사주려 한 것은 증여세 포탈이라며 수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대통령으로서 법 절차를 무시한 점에 대해서는 거듭 사과 말씀 드립니다. 대통령은 자연인으로서의 경제 행위조차 국민적인 감시를 받고 그 절차는 명경처럼 맑아야 한다는 엄정한 현실을 망각하고 국민들의 법 정서를 헤아리지 못한 미련함은 비난받아 마땅합니다. 그런 점에서 이번 내곡동 사저 의혹 사건 특검의 수사 결과를 겸허히 수용합니다.

그러나, 국민 여러분. 대통령은 내란 또는 외환의 죄를 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형사상 소추를 당하지 않도록 헌법에도 규정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것이 대통령은 수사 대상이 될 수 없다는 말은 결코 아니지만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국가수반으로서 임무를 수행하기 위한 최소한의 예우라고 생각합니다.

국민 여러분. 이제 대선이 한 달 남았습니다. 대통령이 자신이나 가족의 비리로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하는 비극적 현실은 저의 시대로 끝을 맺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현직 대통령으로서 국민의 존경과 신망을 업고 국가의 발전과 국민의 복리를 위하여 혼신을 다할 수 있도록 대통령에게 힘을 실어 주실 것을 당부합니다. 아울러 누가 차기 대통령이 되든지 다음 대통령 시대부터는 서로 협력하고 발전을 위해 머리를 맞대는 정치권이 되겠다고 대선 후보들이 먼저 약속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이런 가상의 사과문을 써 봤다. 대통령에 대한 예의가 아닐 수도 있다. 대통령 임기 말이 되자 우호적이던 일부 언론마저 자세를 바꿔 사납게 물어뜯고 있다. 내곡동 사저에 대해서는 이미 두 차례나 사과를 했고 또 되팔아 원상회복 됐는데도 특검은 실현되지도 않은 미래 이익까지 겨냥해서 증여세 포탈이라고 결론 내렸다. 그러나 이제 18대 대통령 선거를 한 달 남겨둔 시점에서 퇴임을 앞둔 대통령을 더 이상 흠집내는 것도, 따지는 것도 차기 대통령을 위해서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런 상상을 해봤다. 대통령이 이렇게 국민들에게 솔직하게 털어놓고 또 국민들도 이젠 대통령을 놓아 드릴 것을 충고한다.

대통령 선거가 끝나면 패자는 언제나 결과에 승복하기 보다는 반대 명분을 찾고 편가름을 해 왔다. 멀리는 `정신적인 대통령`에서부터 지역패권주의를 앞세우는 등 사사건건 발목을 잡고 딴지를 걸었다. 이명박 대통령도 역대 어느 대통령보다 압도적 표차로 당선됐지만 그 결과를 깨끗이 인정하고 협력하지 않는 우리의 풍토가 지금의 국정을 몰아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물론 대통령의 단호한 자기 관리가 먼저이기는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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